숨 거두는 순간까지 붓 안 놓았다…97세로 떠난 일본 미술 거장의 마지막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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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방울 무늬와 호박 조형물로 세계 미술계에 큰 영향
- 뉴욕 중심 활동 후 일본 귀국해 미술관 개관과 문화훈장 수상
- 생전 환각 경험 예술로 승화하며 다방면에서 창작 활동 활발
쿠사마 야요이는 1929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환각과 환청을 겪으며 이를 예술로 승화시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대표작인 선명한 물방울무늬와 거대한 호박 조형물, 그리고 거울을 활용한 ‘인피니티 미러룸’ 등은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얻었다. 쿠사마는 1952년 첫 개인전을 연 뒤,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기존 미술의 틀을 깨는 설치미술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973년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도 회화, 조각, 소설, 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며, 2017년에는 도쿄 신주쿠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개관했다.
쿠사마는 2016년 일본 문화훈장, 2003년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 2009년 일본 문화공로자 등 다수의 상을 받으며 예술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참가, 1998년 뉴욕현대미술관 회고전, 2011년 이후 유럽과 미국 주요 미술관 순회전, 그리고 중남미와 일본에서 수십만 명의 관람객을 모은 전시 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과 패션의 경계도 허물었다. 그의 대표 조형물인 ‘호박’은 가가와현 나오시마 등지에 설치되어 지역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그는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며,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꽃을 그리곤 했다. 13세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낙하산 천 생산에 동원되기도 했다. 교토에서 일본 전통 회화인 ‘니혼가’를 공부했으나 형식적 제약에 답답함을 느껴, 1958년 뉴욕으로 건너가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이어갔다. 뉴욕에서는 물방울과 그물무늬를 활용한 작품, 거울과 조명을 이용한 설치미술, 그리고 나체 퍼포먼스 등으로 아방가르드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1968년에는 뉴욕에서 동성애자 결혼식을 열고,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하는 퍼포먼스, 베트남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공개 편지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활동도 펼쳤다.
쿠사마는 생애 내내 미술계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죽은 뒤 어떤 평가를 받을지 상상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아웃사이더로 남는 것이 좋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문학에도 관심을 두어 다수의 소설과 시, 자서전 등을 남겼다.
쿠사마 야요이는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였다. 쿠사마 재단은 27일 부고를 전하며, 그녀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고 예술에 헌신했다고 추모했다. 재단 측은 앞으로도 쿠사마의 뜻을 이어받아 예술을 통해 전 세계에 희망과 힘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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