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조명 아래 마이크를 잡았던 손에 이제는 묵직한 페인트 붓과 분사기가 쥐어졌다. 지난 2014년 9인조 보이그룹 ‘비티엘(BTL)’의 멤버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오지민의 이야기다.
한때 K-POP 스타를 꿈꾸던 그는 현재 어두운 공사장 현장을 누비는 페인트 도장 기술자이자 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일구어가고 있다.

꿈은 잔인할 만큼 차갑게 식어버렸다. 약 2년간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 야심 차게 데뷔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준비하던 2집 컴백마저 무산되면서 팀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불확실한 미래와 좌절감 속에서 입대한 그는 군 복무 중 연인이던 현재의 아내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서, 스물다섯의 어린 나이에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위치에 서게 됐다.
연예계에 대한 미련을 뒤로하고 생계를 위해 선택한 길은 현장 기술직이었다. 무작정 집 근처 페인트 가게를 찾아가 밑바닥부터 일을 배웠다. 페인트 가루를 뒤집어쓰며 보양, 퍼티, 천장 분사 작업을 익혔다. 먼지와 페인트 범벅이 되기 일쑤였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
가장을 움직인 것은 절박함과 성실함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약 1년 10일 차가 되던 시기, 그는 페인트 본업으로만 월 450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기술자로 성장했다.
여기에 오후 4~5시면 마감되는 현장 일과 이후 시간을 활용해 SNS 브랜드 마케터와 영상 편집 부업까지 병행했다.
이동 시간과 점심시간을 쪼개 일한 결과, 월 총수입 700만~800만 원을 달성하며 단기간에 안정적인 생계 기반을 마련했다.
그렇게 흐른 3년, 각고의 노력 끝에 오지민은 단순 인부를 넘어 자신의 도장 사업장을 운영하는 정식 기술자로 자리를 잡았다.
한때 함께 활동했던 옛 동료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아무것도 없는 빈 벽에 색을 채워 넣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이제는 무대보다 더 즐겁다”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뛰어든 일이지만 정직하게 땀 흘려 버는 가치를 배웠다”고 밝혔다.
가수나 배우에 대한 미련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는 그 마음을 가슴 깊은 곳에 잘 묻어두었다고 말한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무대는 화려한 방송국이 아닌,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의 울타리를 지켜내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땀방울로 정직하게 미래를 칠해나가는 전직 아이돌 오지민의 두 번째 무대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