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주영이 밝힌 한 달 휴가의 꿈

1984년 방송에 출연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청년 패널로부터 파격적인 질문을 직접 받았다. 청년은 정주영 회장에게 1달간의 온전한 휴가가 생긴다면 과연 무엇을 하겠냐고 공개적으로 물었다. 일생 동안 쉼 없이 현장을 누비며 한국 경제를 개척한 거인에게 휴식에 대한 질문이 던져진 셈이다.
정주영 회장은 평생 방학이란 없었다며 질문 자체를 참으로 꿈같은 이야기라고 호탕하게 표현했다. 그는 만약 1달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전국의 모든 명산과 계곡을 찾아 자유롭게 누비겠다고 답했다. 어릴 적 품었던 자연에 대한 깊은 동경을 마음껏 만끽하며 자연 속에서 푹 쉬고 싶다는 진심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1915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소 판 돈을 들고 상경하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썼다. 그는 쌀가게 배달원으로 시작해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현대건설을 창업하며 굴지의 대기업을 세웠다.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며 국가 경제의 대동맥을 완성했다.
그는 울산 백사장의 사진 1장과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으로 영국 차관을 끌어왔다. 거대한 조선소를 건립하는 동시에 첫 유조선을 건조하는 세계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신화를 창조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임직원들에게 던진 이봐 해봤어라는 명언은 한국 기업가 정신의 상징으로 남았다.
1975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자동차 모델인 포니를 양산하며 자동차 산업의 기틀을 완벽히 다졌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외친 서산 간척지 공사에서는 폐유조선을 침몰시키는 공법으로 물살을 가로막았다. 중동 건설 붐을 주도하며 외화를 벌어들여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위원장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오전 5시면 간부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현장으로 향했다. 정주영 회장은 언제나 현장이 자신의 고향이자 일터이며 가장 뜨거운 삶의 무대라고 강조했다. 80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1001마리의 소 떼를 몰고 방북하며 남북 경협의 물꼬를 텄다.
수많은 기적을 만들어낸 그였지만 평생 단 1번도 자신만을 위한 개인적 긴 방학을 누리지 못했다. 한 청년의 질문을 받고서야 떠올린 그의 유일한 소원은 다름 아닌 소박한 자연 속 여행이었다. 쉴 틈 없는 치열한 승부사로 살아온 거인의 이면에는 자연을 그리워한 순수한 마음이 남아있었다.
한국 현대사를 바꾼 위대한 거목은 2001년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도전 정신은 영원히 남았다. 언제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었던 그의 삶은 오늘날 수많은 세대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한 달의 휴가를 꿈꾸며 환하게 웃었던 그의 미소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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