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태안군과 서산시 사이에 위치한 ‘가로림만’

충청남도 태안군과 서산시 사이에 위치한 ‘가로림만’. 울창한 숲을 연상케 하는 서정적인 이름 덕분에 많은 이들이 우리말 고유의 지명이나 아름다운 한자어일 것이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이 익숙한 지명 뒤에는 19세기 근대사의 파도와 함께 건너온 낯선 외국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평범한 지리 명칭으로 굳어진 ‘가로림’이 사실은 한 프랑스인의 이름을 빌려온 것이라는 점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명칭의 실체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여동생인 ‘카롤린 보나파르트’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프랑스 정찰대는 조선 침공 가능성을 타진하고 식민지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한반도 서해안 일대를 측량했다.
당시 프랑스 해군은 태안 일대의 바다를 ‘카롤린 만’이라 명명했으며, 이것이 시간이 흐르며 한국식 한자인 ‘가로림’으로 음차되어 오늘날까지 공식 지명으로 남게 된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아산만 역시 나폴레옹의 남동생 이름을 딴 ‘프린스 제롬 만’으로 불린 기록이 있으나, 아산만은 제 이름을 유지한 반면 가로림만은 외래 지명이 고착화된 드문 사례다. 문제는 지명의 주인공인 카롤린의 행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오빠인 나폴레옹을 배신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어, 프랑스 내부에서도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이다.

오늘날 가로림만은 국가해양생태공원 조성이 추진될 만큼 생태계의 보고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갯벌의 이름이 정작 우리 역사가 아닌, 한때 이 땅을 넘봤던 이들의 ‘정복 의지’와 ‘가족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묘한 이질감을 남긴다. 우리가 매일 부르는 지명이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누군가의 야심이 투영된 흔적일 수 있다는 점, 가로림만은 그 잊힌 기록을 소리 없이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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