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터지면 달려가 2천 명을 구한 배우 정동남

화려한 조명 아래서 연기를 펼치던 배우 정동남은 대형 재난 현장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생명을 구하는 구조 전문가로 맹활약했다. 대중에게는 개성 넘치는 연기자로 친숙하지만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사건 사고 현장을 직접 누빈 베테랑 인명 구조대원이다. 카메라 앞에서 보여준 독특한 캐릭터 뒤에는 언제나 타인의 생명을 먼저 생각하며 거친 물속으로 뛰어드는 뜨거운 구조 본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위험천만한 인명 구조에 인생을 바치기 시작한 계기에는 과거 한강에서 꽃다운 나이의 친동생을 익사 사고로 떠나보낸 가슴 찢어지는 비극이 있었다. 당시 돈이 부족해 동생의 시신조차 제때 수습하지 못할 뻔했던 절망적인 아픔을 겪은 뒤 다시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유가족이 생기지 않도록 직접 수중 다이빙 기술을 연마했다.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 시작한 잠수 훈련은 마침내 그를 한국구조연합회 회장이라는 묵직한 직책으로 이끌며 수많은 재난 현장의 최전선에 서게 만들었다.

본격적인 구조대원 활동을 선포한 그는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 참사와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현장에 한달음에 달려가 수색 작업을 펼쳤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흙탕물과 거센 조류 속에서 잔해에 몸이 걸리는 극한의 위기를 넘나들며 실종자 수습과 구조에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뒤이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 참사 현장까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출동해 수많은 생명을 건져 올리며 NTSB 표창까지 받았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에는 칠흑 같은 바다로 뛰어들었고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민간 잠수사들을 이끌고 팽목항 현장을 꿋꿋하게 지켰다. 물살이 거세기로 악명 높은 맹골수도 해역에서 잠수병의 공포를 무릅쓴 채 잠수 장비를 메고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바닷속을 헤집었다. 연예인이라는 타이틀 대신 구조 장비를 둘러맨 그의 우직한 뒷모습은 지켜보던 수많은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의 본업이었던 연기 생활 역시 강렬한 카리스마와 독보적인 개성으로 대중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오랜 시간 사랑받았다. 1980년대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비롯해 무풍지대, 적색지대, 야인시대 등 수많은 히트작에서 굵직한 액션과 독보적인 악역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특히 이마 중앙의 점을 누르면 괴력을 발휘하는 독특한 콧바람 차력 묘기는 예능 프로그램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그를 남녀노소 모두가 기억하는 친근한 스타로 만들었다.
체육 분야에서도 태권도와 합기도 등 다양한 무술 합계 수십 단의 유단자로 활약하며 탄탄한 체력과 강인한 담력을 오랜 세월 꾸준히 길러왔다. 거친 무술로 다져진 강철 같은 피지컬과 고도의 수중 다이빙 기술은 그가 생사의 갈림길인 재난 현장을 버텨내는 가장 든든한 무기가 되었다. 실제로 네덜란드 국제구급구조 교육전문기관 지도자 교육까지 완벽하게 수료하며 민간인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전문 구조 역량을 빈틈없이 갖췄다.
자신의 출연료와 사비를 아낌없이 털어 구조 장비를 사고 팀원들을 지원하느라 집안 살림이 거덜 날 뻔한 위기도 여러 차례 넘겨야 했다. 주변에서는 위험하고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사서 고생하느냐며 극구 만류했지만 차가운 물속에 갇힌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다며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재난 현장에 투입될 때마다 유언장을 작성해 두고 출동할 만큼 매 순간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구조 작업에 전력을 다했다.
생명을 향한 그의 뜨거운 헌신은 단순한 연예인의 대외 봉사활동 수준을 넘어 대한민국 재난 구호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의 삶보다 진흙투성이 잠수복을 입은 구조대원의 삶을 더 자랑스럽게 여긴 그의 진심은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이어졌다.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 위험에 처하면 장비를 챙겨 가장 먼저 달려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그는 진정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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