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뒤 유부남 안 가수 임주리의 파란만장한 삶

가수 임주리는 1977년 미8군 무대에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며 독보적인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1979년 TBC 드라마 야 곰례야 주제가를 부르며 가요계에 정식 데뷔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와 깊은 감성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실력파 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1987년 작사가 양인자와 작곡가 김희갑이 작업한 곡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우연히 악보로 접하고 직접 취입했다. 본래 다른 가수에게 갈 예정이었던 곡을 임주리 특유의 애절한 음색으로 완성해 발표했다. 발표 초기에는 대중의 큰 반향을 얻지 못하며 오랜 무명에 가까운 침체기를 겪었다.
미국 체류 시절 깊은 사랑을 나눈 상대 남성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그가 별거 중인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충격적인 현실 속에서도 임주리는 미국에서 홀로 아들 재하를 낳고 출산 22일 만에 아기를 품에 안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혼모로서 겪어야 했던 사회적 편견과 막막한 생활고를 홀로 감내하며 갓난아이를 묵묵히 키워냈다.

1993년 방영된 MBC 인기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서 배우 김혜자가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르며 초대형 역주행 신화가 시작됐다. 6년 전 발표했던 노래가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하루 인세 수입만 1800만 원을 돌파하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행사비로 회당 수천만 원을 벌어들이며 가요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노래가 대성공을 거둔 뒤 이혼 절차를 마무리한 아이 아버지가 약 5년 만에 다시 연락을 취해왔다. 아들에게 온전한 아버지를 만들어주기 위해 그와 정식으로 혼인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격 차이와 극심한 가정불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결혼 8년 만에 완전한 파경을 맞았다.
이혼 이후에도 지인에 대한 무리한 투자와 빚보증으로 인해 수십억 원대에 달하는 거액의 사기 피해를 당했다. 막대한 채무를 떠안고 극심한 경제적 파탄과 생활고를 겪는 혹독한 시련이 계속됐다. 벼랑 끝에 몰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생계를 꾸리며 아들의 곁을 든든하게 지켰다.
어머니의 탁월한 음악적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 재하는 실력파 트로트 가수로 성장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방영된 KBS2 오디션 프로그램 트롯 전국체전에 출전해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매너를 인정받으며 트로트계의 촉망받는 스타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모진 세월의 풍파를 강한 모성애로 견뎌낸 임주리는 든든하게 성공한 아들과 나란히 방송 무대에 서고 있다. 수많은 배신과 경제적 위기를 이겨내고 아들과 함께 노래하며 인생의 제2 전성기를 활짝 열어젖혔다. 기구한 삶의 굴곡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일어선 가수의 인생 역정은 많은 대중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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