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 8주 차, 보통이라면 극장에서 내려갈 시기에 오히려 관객이 늘어난 영화가 있습니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3관왕에 오르자, 관객들이 뒤늦게 극장으로 몰려든 것이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두 남자의 우정 이야기, ‘그린 북’입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와 허풍쟁이 운전사
1962년 미국.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인종차별이 극심한 남부 순회공연을 앞두고 운전사 겸 보디가드를 고용합니다. 그가 바로 입담과 주먹이 먼저 나가는 이탈리아계 백인 토니 발레롱가. 학식과 품격의 셜리, 거칠지만 정 많은 토니.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두 사람이 초록색 자동차 안에서 부대끼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여정이 이 영화의 전부이자 핵심입니다. 실제 인물인 토니의 아들이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 두 사람의 실화가 지닌 온기를 그대로 살렸다는 점도 화제가 됐습니다.

그린 북이라는 제목에 담긴 시대
제목의 그린 북은 실제로 존재했던 흑인 여행자용 안내 책자에서 왔습니다. 흑인이 이용할 수 있는 숙소와 식당만 골라 실은 책이었죠. 무대 위에서는 박수를 받지만 무대 밖에서는 식당 출입조차 거부당하는 셜리의 현실을 통해, 영화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차별의 시대를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작품상 포함 3관왕, 그리고 역주행
2019년 초 국내 개봉 당시 조용히 출발했던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남우조연상 등 3관왕에 오른 직후 하루 관객이 두 배 이상 뛰며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했습니다. 상영관이 오히려 늘어나는 보기 드문 역주행이었죠. 입소문의 핵심은 한결같았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라는 것.

치킨과 편지가 만든 명장면들
차 안에서 프라이드치킨을 처음 먹어보는 셜리, 아내에게 보낼 편지를 대신 다듬어주는 셜리와 그것을 받아 적는 토니. 이 영화의 명장면들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함께 먹고, 함께 웃고,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배우는 순간들이 쌓여 마지막 장면의 뭉클함을 완성하죠. 두 배우의 완벽한 호흡이 그 온기를 배가시킵니다.

연말에 꺼내 보고 싶은 어른의 영화
편견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지만,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친구가 되는 일은 오늘도 가능합니다. ‘그린 북’은 그 평범한 진실을 유머와 품위로 증명하는 영화입니다. 마음이 각박해진 날, 초록색 캐딜락의 여정에 동승해 보세요. 내릴 때쯤엔 누군가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져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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