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글씨가 친일파 유품?

국립중앙박물관이 독립운동가의 친필 유품이라며 전시했던 붓글씨 작품을 돌연 철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해당 작품은 일제강점기 항일 투쟁을 펼친 박원근 지사의 유묵으로 소개되어 큰 감동을 모았던 유물이다. 하지만 해당 글씨가 악질 친일파 박중양의 친필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박물관은 전시를 중단했다.
충북 보은 출신의 박원근 지사는 1930년대 일제에 저항하다 옥고를 치르고 1950년에 학살당한 애국지사다. 평생 아버지의 유품을 보지 못했던 아들 박용현 씨는 전시 소식을 듣고 박물관을 찾아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나 감격의 눈물을 흘린 지 불과 사흘 만에 유품의 진위 논란이 터지며 전시장은 시 한 편으로 대체됐다.

논란이 된 인물 박중양은 일제강점기 고위 관료를 지내며 3·1 운동 진압에 앞장섰던 거물급 친일파다. 박중양의 개명 전 이름이 공교롭게도 독립운동가와 동일한 박원근이었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동일 인명 여부를 제대로 교차 검증하지 않고 섣부르게 전시를 강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문제의 붓글씨는 박물관 특별전에 출품된 개인 소장품으로 밥 한 그릇도 나라의 은혜라는 뜻의 한자가 적혀 있다. 유물에는 한인 박원근이라는 서명이 남아 있어 관계자들은 독립운동가의 작품으로만 지레짐작했다. 전문가 자문을 거쳤다고는 하나 기초적인 인물 대조조차 소홀히 한 채 최고 권위 기관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렸다.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박물관 측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뒤늦게 사과문을 게시하고 고개를 숙였다. 유홍준 박물관장은 철저한 재감정과 함께 유물 검증 시스템 전반을 전면 쇄신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국가기관의 미숙한 행정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독립유공자 후손의 가슴에는 깊은 멍이 남게 됐다.
진상 규명에 착수했지만 실제 박원근 지사의 진품 여부를 완벽히 밝혀내기는 매우 희박한 상황이다. 박 지사가 생전에 남긴 다른 필적 자료가 거의 전무해 대조군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박중양의 글씨가 아닌 것으로 판명 나더라도 제3자의 위작일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박원근 지사의 후손들은 국가기관의 위상을 존중하며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후손들은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절제된 입장을 언론을 통해 덤덤히 전했다.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희생된 선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박물관의 정밀한 조사가 시급한 시점이다.
박물관 측은 남아 있는 친일파 박중양의 필적과 문제의 유물을 비교 분석하여 최종 결론을 내놓을 예정이다. 잃어버린 유품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백발 유족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국가 최고 문화기관으로서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이번 진위 논란의 명확한 해명이 반드시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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