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헌 추진 중단 배경에 여야 신뢰 붕괴와 정치적 갈등 심화
- 정점식 원내대표, 정부 정책과 재정 운용 강도 높게 비판
- 국민의힘, 부동산·세제 개편 등 7대 정책 약속 통해 반격 예고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 체제를 바꿀 수 있는 개헌 논의가 사실상 좌초 위기에 놓였다.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개헌안 특성상,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협조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이재명 정부 임기 내 개헌 논의에 선을 그으면서다. 여야 간 신뢰가 무너진 데다 정치적 합의의 전제 조건마저 사라지면서, 39년 만의 개헌 시도는 다시 멀어졌다.
개헌 논의의 동력 상실에는 여러 변곡점이 있었다. 지난 3월 우원식 전 국회의장이 주도한 ‘원포인트 개헌’ 추진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범여권은 헌법 제명의 한글화와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마련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현실 변화에 맞춰 헌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동의 없이 본회의에 상정된 개헌안은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이후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 없는 개헌 강행에 강하게 반발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제1야당을 설득하지 않은 채 밀어붙인 점이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7월 조정식 국회의장이 현직 대통령 연임 문제에 대해 “국민과의 소통, 정치적 당사자 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당시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조 의장이 논의 가능성을 열어둔 듯한 발언을 하자 개헌 목적에 대한 의심이 증폭됐다. 이후 조 의장과 민주당 지도부는 헌법상 불가능함을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국민의힘은 친명계 인사인 조 의장의 발언을 이재명 대통령의 장기 집권 의도와 연결지으며 공세를 이어갔다. 개헌 논의의 초점도 권력구조 개편에서 대통령 임기 연장 의혹으로 옮겨갔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중단 이슈까지 겹치면서 야권의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주당의 공소취소 특검법, 보완수사권 폐지, 대법관 증원 추진 등을 언급하며 “정부와 여당의 국정과제 1호는 대통령의 자기 죄 지우기”라고 비판했다. 개헌 역시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와 퇴임 이후를 대비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국민의힘 내에 자리잡았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이번 정부에서 개헌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명백하게 위헌을 저지르고 개헌으로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세력과 절대로 개헌을 논의하지 않겠다”며, 이재명 정부 및 민주당을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날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출발점으로 한 개헌 제안을 내놨으나, 국민의힘은 하루 만에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불과 4~5개월 전만 해도 국민의힘은 현직 대통령의 연임이나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면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올해 4월 이재명 대통령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회동 직후에도,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연임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면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여야 간 신뢰가 무너지고, 개헌 목적에 대한 의혹이 커지면서 국민의힘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국민의힘은 이날 연설에서 개헌 반대 입장과 함께, 치안 확립, 세제 개편, 부동산 규제 폐지, 연금 독립성 강화, 건전재정 확립, 한미 핵억제력 강화 등 7대 약속을 통해 국가 시스템 정상화를 약속했다. 정 원내대표는 현 정부의 치안, 부동산, 주식, 법치, 국방, 재정 등 모든 영역이 파탄에 이르렀다고 진단하며, 보완수사권 폐지로 인한 치안 부실, 서울 아파트값 폭등, 증시 변동성 확대, 관치 개입으로 변질된 호남 반도체 투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또한 1,300조원을 넘긴 국가채무와 821조원에 달하는 내년 예산, 미래대응기금 추진을 “미래세대 약탈”이자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정 원내대표는 정부의 증세 기조와 달리, 부부간 상속·증여세 전면 폐지, 1가구 1주택자 및 생애 최초주택 취득세 감면, 초과세수 발생 시 국가채무 우선 상환 등 세제 혜택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재벌 납치”로, 노란봉투법을 “법 같지도 않은 법”으로 비판하며, 원청의 사용자성과 교섭범위 명확화 등 노동법 재개정 의지도 밝혔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한미 핵 공유,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F-35 전투기 전술핵 탑재훈련 등 핵 억제력 강화 방안을 언급했다.
개헌 논의와 관련해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연임이나 중임을 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선언하면 된다”며,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는 “개헌을 집권자의 권력 연장 수단으로 쓰겠다면 국민이 동의하겠느냐”고 반문하며, 대통령이 ‘5년만 하겠다’거나 ‘다시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개헌 논의의 순수성과 진정성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재명 대통령이 연임을 염두에 두고 개헌을 추진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대통령께서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부인했다. 또한 이 대통령의 ‘연임 불가’ 선언 요구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 수석은 9월 유엔 총회 등 외교 일정과 맞물려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국민의힘이 이재명 정부 임기 내 개헌 논의에 대한 문을 완전히 닫으면서, 1987년 이후 39년 만에 추진됐던 개헌 시도는 정치적 합의와 신뢰의 붕괴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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