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가 완벽했던 클린스만이 과르디올라보다 앞선 황당한 현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이번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 공개채용에 지원할 계획이었습니다. 6경기짜리 임시 체제라는 조건에도 개의치 않았고, 이미 코칭스태프 구성까지 마쳐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지원 서류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조건을 마주하게 됐고, 결국 지원을 접었습니다.
벤투 감독은 이 과정에서 “체육교사를 뽑는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는데, 축구 감독의 역량보다 서류상의 정량적 조건이 앞선 채용 방식에 대한 불만이 고스란히 드러난 발언이었습니다.
로베르토 모레노 감독으로 마무리된 사상 첫 공채
우여곡절 끝에 사상 첫 A대표팀 감독 공개채용은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오른팔로 알려진 스페인 출신 로베르토 모레노 감독의 선임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잡음 없이 절차가 마무리됐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습니다. 선임 과정을 이끈 현영민 전력강화위원장은 공개채용 방식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전력강화위원회 내부에서도 A대표팀 감독까지 공채로 선발하는 것이 맞는지를 두고 상당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전에 U-20 대표팀이나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공채로 선발한 사례는 있었지만, A대표팀은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축구협회가 토마스 투헬 감독을 공채로 선임한 전례가 있긴 하지만, 세계적인 지도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잉글랜드와 한국의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컸습니다.
절반 이상이 서류에서 탈락, 포옛 감독마저 고배
문제는 실제 적용된 채용 조건이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일반적인 채용 기준을 축구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고, 그 과정에서 선임 작업 속도가 더뎌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유럽 지도자들의 시각에서는 여전히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22명의 지원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서류 심사 단계에서부터 탈락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감독뿐 아니라 함께 지원하는 코칭스태프 전원의 자격 요건도 꼼꼼히 따져졌는데, 프리미어리그 출신 코치진으로 구성된 한 지원팀은 함께한 한국인 피지컬 코치가 2급 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보유하지 못해 탈락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전북현대를 리그와 컵대회 2관왕으로 이끌었던 거스 포옛 감독 역시 이 서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영민 위원장 스스로도“ 감독 지원자의 역량은 매우 뛰어났지만 함께 지원한 코치진의 조건 미달로 아쉽게 서류에서 탈락한 사례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누구’보다 ‘어떻게’가 우선된 공채, 보완 과제로 남아
이번 공개채용 방식을 두고 나오는 가장 큰 지적은 ‘어떤 지도자를 데려올 것인가’보다 ‘어떤 절차로 뽑을 것인가’에 무게가 쏠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정작 어떤 축구 스타일을 구사하는 지도자인지, 그 스타일이 한국 대표팀에 실제로 맞는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렸다는 평가입니다. 지금의 방식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서류 작성이 완벽한 지도자가 실력은 뛰어나지만 서류가 미흡한 지도자를 이기는 구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앞으로도 공개채용 방식이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조건과 절차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현영민 위원장 역시 한국 대표팀에 맞는 최적의 지도자를 영입하기 위해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면서도 채용 방식의 장단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번 공채가 신뢰 회복이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실질적인 경쟁력 있는 지도자 영입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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