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이 끝난 뒤 거실에는 접어 둔 이불과 빈 과일 상자, 자녀들이 남기고 간 웃음이 함께 남아 있다. 이사나 집수리를 앞두고 서랍을 정리하다 보면 오래된 통장보다 더 오래 손에 쥐고 있게 되는 것이 있다.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미뤄 온 장례 이야기다. 부모는 미리 조용히 정리해 두고 싶어 하지만 자녀는 아직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한다. 우선 이 차이부터 살펴야 한다.


3위 자녀의 선택을 막지 않는 부탁
가장 먼저 적어야 할 내용은 장례식의 규모나 형식이 아니다. 가족이 무리해서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남기는 것이 먼저다.
조문객 수와 의례, 복장처럼 자녀들의 의견이 엇갈릴 수 있는 항목에는 ‘꼭 이렇게 해라’보다 ‘형편에 맞게 해도 된다’고 적는다. 부탁이 명령으로 받아들여지면 남겨진 사람은 슬픔에 더해 죄책감까지 떠안게 된다.
2위 흩어진 정보를 한곳에 모으기
그다음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정보를 한곳에 정리한다. 연락을 부탁할 사람과 중요한 서류의 위치, 사용 중인 계정, 정리해야 할 물건을 알아볼 수 있도록 적는다. 비밀번호 같은 민감한 정보는 별도의 안전한 방법으로 보관한다.
버릴 물건과 다른 사람에게 건넬 물건도 간단히 표시해 두면 자녀가 물건을 정리할 때마다 부모의 뜻을 짐작할 필요가 없다.
1위 남은 날의 관계를 부탁하기
가장 중요한 부탁은 죽은 뒤에 치러야 할 절차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서로 어떻게 지낼지에 관한 내용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이자 작가인 남궁인은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들을 지켜보며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과 인간이 지켜야 할 존엄과 연민을 이야기해 왔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를 기적으로 여기고, 사소한 불평에 매달리기보다 오늘 하루를 뜨겁게 사랑하자는 것이다.
마지막 부탁에는 제사를 거창하게 지내라는 말보다 서로를 탓하지 말고, 아플 때 혼자 견디지 말며, 가끔 함께 밥을 먹으라는 내용을 적는 편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죽음을 준비한다고 해서 남은 시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껏 가족에게 미뤄 온 말을 오늘 꺼내는 일에 가깝다.
거실 정리를 마친 부모는 얇은 봉투 앞면에 ‘급할 때 함께 열어볼 것’이라고 적는다. 자녀가 명절에 두고 간 귤 몇 개를 접시에 옮긴 뒤, 맨 아래에는 집수리가 끝나면 새 거실에서 다시 한 끼 먹자는 문장을 덧붙인다. 봉투는 서랍 깊숙이 넣지 않고 가족사진이 놓인 장식장 두 번째 칸에 눕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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