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위기의 순간마다 당장의 현실만 바라보지 않고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선택을 해왔다. 가난한 농경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과학기술과 교육에 대한 투자는 대표적인 사례다.
가난한 나라가 미래에 투자한 이유
1960년대 한국은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가였다.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가 이어졌고, 당시 학교에서는 옥수수와 밀 등 원조 물자로 만든 빵을 급식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선택한 방향은 단순한 구호에 머물지 않았다.

굶주리던 시절, 과학기술에 돈을 쏟아부었다
1965년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과학기술 연구기관 설립 논의가 본격화됐고, 이듬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출범했다.
당시 정부는 산업화를 뒷받침할 자체 연구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과학기술에 투자했다. 이후 고급 이공계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별도의 교육기관 설립도 추진됐다.
그 결과 1971년 한국과학원(KAIS)이 문을 열었다. 현재의 KAIST다. KAIS 설립에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약 600만 달러 차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 수준에 불과했지만, 정부는 산업화를 위해 필요한 과학기술 인재를 직접 길러내는 데 국가적 자원을 투입했다.
IMF 한복판에서도 학교마다 PC를 깔았다
그리고 약 30년 뒤 또 한 번의 선택이 이어졌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한국은 강도 높은 긴축과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IMF 프로그램에는 재정 긴축과 지출 삭감 등의 조치가 포함됐다. 실제로 1998년에는 각 부처 예산 삭감과 저우선순위 사업 축소 등이 추진됐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교육정보화 사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1996년부터 시작된 1단계 교육정보화 계획은 2000년까지 학교의 컴퓨터와 학내전산망, 인터넷 등 정보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특히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사업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면서 전국 초·중·고교에 학내전산망이 구축됐고, 교실과 교원에게 PC가 보급됐다.
결과는 놀라웠다. 2000년 말까지 1단계 사업이 완료됐고, 2001년에는 전국 1만여 개 초·중·고교의 인터넷 연결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모든 교실에 PC가 설치되고 모든 교원에게 PC가 보급되는 수준까지 정보화 인프라가 갖춰졌다. 당시 정부 자료는 이를 세계 최초 수준의 전국적 학교 인터넷 구축 사례로 평가했다.

위기 때 지킨 투자가 IT 강국의 토대가 됐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과학기술 인재에 투자했고, 외환위기에는 교육정보화 인프라를 구축했다. 눈앞의 위기만 보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장기 투자는 한국의 산업화와 정보화 발전을 뒷받침한 중요한 기반 가운데 하나가 됐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줄일 것인가만큼, 무엇을 끝까지 지킬 것인가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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