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책임자임에도 끝내 책임 인정 안 해
-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정호용 상임고문 임명 논란 일으켜
- 정호용, 광주에 81시간 머물며 진압 작전 측면 지원 확인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신군부 ‘핵심 5인방’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생전 끝내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13일 연합뉴스는 정 전 장관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빈소가 수원 아주대학교 병원에 마련됐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날 현재 아주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공식 홈페이지에는 정호용의 부고가 올라오지 않았고, 35호실 부고 알림 모니터도 꺼진 상태였다. 장례식장 사이트에는 35호실이 ‘점검중’으로 표시돼 있다고 연합뉴스는 덧붙였다.
정호용은 1980년 5월 18일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재임하며, 전두환 보안사령관, 노태우 수도경비사령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황영시 계엄부사령관 등과 함께 신군부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이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데 깊이 관여한 핵심 인물로 꼽힌다.
5.18 진압 이후 정호용은 1981년 대장으로 승진했고, 1983년에는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1985년 예편 후에는 전두환 정부에서 내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지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에는 대구에서 13,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그러나 1996년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구속됐고,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모의와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징역 7년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정호용이 공수여단에 대한 행정·군수지원, 전교사령관에게 특성 및 부대훈련상황 전달, 광주 재진입작전에 필요한 장비 준비와 예하부대원 격려 등 광주 진압작전을 측면 지원했다고 판시했다(대법 96도3376 전원합의체).
정 전 장관은 특전사령관이었지만,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별도의 지휘 계통에 속해 있었다며 자신에게 진압 권한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5.18진상조사위원회는 그가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약 81시간 동안 광주에 머물렀던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위의 대면조사에는 끝내 응하지 않았고, 두 차례 서면 진술서만 제출했으나 지휘 책임을 부인하는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조사위 활동 중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도 있다.
2022년 제21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정호용을 선대위 상임고문으로 임명했다가 논란이 일자 당일 취소한 일도 있었다. 국민의힘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종하·이주영 전 국회부의장 등과 함께 정호용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했으나, 논란이 확산되자 그날 저녁 임명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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