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을 때는 아침이 되면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 출근할 곳이 있고 맡은 역할도 있어 하루 일과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하지만 은퇴 후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오늘 뭐 하지”라는 말이 나온다. 시간이 많아져서 여유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던 역할이 사라져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진 것이다.

비어 있는 것은 일정이 아니라 역할이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것보다 더 허전한 것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고 느끼는 일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직함과 업무를 통해 매일 자신의 쓸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은퇴하면 그런 기회가 갑자기 사라진다.
일정을 바쁘게 채운다고 해도 허전함이 오래 해소되지 않는 이유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정하기에 앞서, 직함이 없어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만의 자리가 있어야 관심도 이어진다
문화심리학자이자 작가인 김정운은 나이가 들수록 직장이나 직함과 관계없이 자신만의 재미와 콘텐츠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혼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인 아지트가 필요하다. 반드시 거창한 작업실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방 한쪽의 책상이나 평소 자주 머무는 자리처럼 방해받지 않고 읽거나 쓰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 일정한 자리를 마련하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관심사를 꾸준한 일상으로 이어갈 수 있다.
사람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관심을 나눌 수 있는 관계다
혼자 지내는 데서 오는 불안을 피하려고 약속을 무작정 늘리면 오히려 피로만 쌓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는지보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의 어떤 면을 드러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과거의 직함만 계속 묻는 사람보다는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편이 낫다.
부담 없이 안부를 주고받고 서로 새로 찾은 즐거움을 존중해주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라진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다만 직함과 무관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김정운의 말처럼 “명함이 사라졌을 때 남는 진짜 내 모습이 내 인생의 최종 점수”일 수 있다. 물론 건강이나 경제적 형편 때문에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거나 범위를 넓히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럴수록 하루를 얼마나 바쁘게 보냈는지보다 혼자 있을 때도 계속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편이 낫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질문에 거창한 답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이 맡긴 역할이 아니라 자신이 계속 관심을 두고 싶은 일을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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