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애들 앞에서 내 말을 자르길래..” 그날 이후 손주 집에 덜 가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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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예순아홉인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아들 집에 가서 손주들을 봐주곤 했다. 며느리가 직장에 다니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고 손주들과 보내는 시간도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손주에게 한마디를 했다가 며느리가 내 말을 중간에 잘랐다.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아들 집에 가는 횟수를 조금씩 줄이게 됐다.

처음에는 며느리가 나를 무시했다고 생각했다
그날 초등학생 손주가 밥은 먹지 않고 계속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말했다.
“밥 먹을 때는 휴대전화 좀 내려놔. 할머니 어릴 때는 밥상에서 그러면 혼났어.”
그러자 며느리가 바로 말을 끊었다.
“어머니, 제가 이야기할게요.”
순간 식탁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며느리는 화를 낸 것도 아니었고 큰소리를 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손주들 앞에서 내 말을 막았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며칠 뒤 며느리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 이번 주 토요일에도 시간 괜찮으세요?”
평소 같으면 바로 간다고 했겠지만 그날은 약속이 있다고 둘러댔다.
며느리가 미워서라기보다 또 내가 무슨 말을 했다가 제지당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날 아들이 혼자 우리 집에 왔다.
“엄마, 요즘 왜 우리 집에 잘 안 와?”
나는 결국 서운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아들이 뜻밖의 말을 했다.
“엄마, 그날 며느리가 엄마 무시하려고 그런 거 아니야.”

그제야 내가 손주를 사랑하는 것과 키우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알고 보니 며느리는 얼마 전부터 아이와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두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혼내고 빼앗는 대신 아이와 규칙을 정해서 스스로 지키게 해보려던 중이었다.
며느리는 내가 틀린 말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아이를 가르치는 방식만큼은 부모인 자신들이 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며칠 뒤 며느리가 우리 집에 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 그날 제가 말을 너무 급하게 잘라서 죄송해요.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 엄마랑 할머니가 서로 다른 말을 하면 애들이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헷갈릴 것 같았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했다.
나는 손주를 내 자식처럼 사랑했지만 손주는 내 자식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들 집에 예전만큼 자주 가지 않는다. 서운해서 발길을 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며느리가 부탁하는 날에 가고 손주와 놀아주되 훈육해야 할 일이 생기면 먼저 며느리에게 말한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한 뒤부터 며느리와의 관계는 전보다 편해졌다.
손주가 잘못하는 모습을 보면 할머니도 당연히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과 손주의 부모 역할까지 대신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 이야기는 실제 시어머니와 며느리, 손주를 둘러싼 여러 가족의 사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가족이 오래 편하게 지내려면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손주에게 사랑을 더해주는 사람이지,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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