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집에 살고 돈을 많이 모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집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가진 것이 평범해도 이상하게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고 가족끼리 웃음이 끊이지 않는 집이 있다.
이어령 선생은 말년에 삶과 죽음, 사랑과 관계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면서 인간은 혼자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손을 내밀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 그의 생각을 따라가 보면 집안의 복을 서서히 사라지게 만드는 습관 역시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3위.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 습관
가족은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가장 적게 한다. 아내가 밥을 차리는 것도 당연하고 남편이 생활비를 벌어오는 것도 당연하며 자식이 부모를 찾아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함이 쌓이면 감사는 사라지고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의무가 된다. 이어령 선생이 말년에 강조했던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에 머물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눌 때 비로소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그의 생각처럼, 가족도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질 수밖에 없다.

2위. 가족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습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쉽게 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처음에는 걱정에서 시작하지만 지나치면 자식의 직업과 결혼, 돈 쓰는 방법, 손주 키우는 방식까지 부모가 결정하려고 한다.
부부 사이에서도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 평생 자신의 방식에 맞추려고 하면 집은 편안한 공간이 아니라 눈치를 보는 공간이 된다. 이어령 선생이 이야기했던 관계에는 언제나 ‘나’와 다른 ‘타자’가 존재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삶까지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1위. 받으려고만 하고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 습관
이어령 선생은 사람과 관계를 설명하며 ‘컵의 손잡이’라는 인상적인 비유를 남겼다. 컵의 손잡이는 컵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잡을 수 있도록 바깥으로 나와 있는 부분이다. 결국 사람도 자신만 가득 채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잡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집안이 서서히 무너질 때는 반대의 모습이 나타난다. 부모는 자식이 먼저 연락하기를 기다리고 부부는 상대가 먼저 사과하기를 기다리며 형제끼리는 “저쪽에서 연락하면 나도 하지”라고 생각한다. 모두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먼저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렇게 각자 자기 몫만 계산하기 시작하면 돈과 집은 남아 있어도 가족이라는 관계는 조금씩 비어간다.

집안의 복은 반드시 큰돈이 들어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전화할 사람이 있고 부모가 늙었을 때 자식이 의무감이 아니라 보고 싶은 마음으로 찾아오며 부부가 나이 들어서도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것 역시 큰 복이다.
이어령 선생이 삶의 마지막까지 붙잡았던 것도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였다. 자신을 채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어야 관계가 살아난다.
그래서 집안을 지키는 가장 좋은 습관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다. 먼저 전화하고, 먼저 고맙다고 말하고, 잘못했으면 먼저 사과하는 것이다.
복이 많은 집은 모든 것을 많이 가진 집이 아니라 서로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는 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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