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시작부터 못을 박습니다. 이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러고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헤어지기까지의 500일을 뒤죽박죽 순서로 펼쳐 놓습니다. 2009년 국내 개봉했던 500일의 썸머는, 훗날 재개봉에서 첫 개봉 성적을 뛰어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첫 문장부터 솔직하게 선을 긋는 이 영화의 태도가, 오히려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순서를 뒤섞은 500일
영화는 1일과 300일, 500일을 마구 오가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설레던 날과 무너지던 날이 바로 붙어 나오니, 관객은 같은 장소와 같은 표정이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 목격하게 됩니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구성이 지금까지도 자주 인용되는 이유입니다. 요일과 일수를 표시하는 자막이 매번 관객의 기대를 흔들어 놓습니다.

조셉 고든 레빗과 주이 디샤넬
톰 역의 조셉 고든 레빗은 상대를 이상화하는 남자의 착각을 설득력 있게 그렸고, 썸머 역의 주이 디샤넬은 누구의 기대에도 맞춰 주지 않는 인물을 담담하게 연기했습니다. 두 사람의 온도 차이가 이 영화의 진짜 주제라는 해석이 지금도 이어집니다. 인디 팝으로 채워진 사운드트랙 역시 이 영화를 기억하게 만드는 큰 축입니다.

첫 개봉을 넘어선 재개봉
2009년 국내 첫 개봉 당시 이 영화가 모은 관객은 13만 7,5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재개봉했을 때는 11만 5,220명을 넘기며 첫 개봉 기록을 따라잡았습니다. 옛 영화의 재개봉이 대개 1~2만 명 선에 머무는 것을 생각하면, 역주행 무비라는 표현이 붙을 만한 성적이었습니다. 여름 극장가의 재개봉 단골 작품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기대와 현실을 나란히 놓은 장면
파티에 가는 톰의 기대와 실제 벌어진 일을 화면을 둘로 나눠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사에 남은 연출로 꼽힙니다. 상상과 현실의 간극을 이보다 잔인하고 정확하게 보여준 장면도 드뭅니다. 짧은 몇 분이지만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관객들이 각자의 연애를 대입해 보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여름이 지나갈 때 보기 좋은 영화
달콤하기만 한 로맨스를 기대하면 당황할 수 있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한 번 보고 몇 년 뒤 다시 보면 감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후기도 많습니다. 여름이 지나가는 이맘때, 조용히 꺼내 보기 좋은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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