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일흔한 살인 나는 결혼하고 40년 가까이 집안 제사를 지냈다. 나이가 들면서 음식 가짓수는 많이 줄였지만 전과 나물 정도는 직접 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이번 제사에 며느리가 커다란 봉투를 들고 와 열어보니 전이며 나물이며 모두 반찬가게에서 사온 음식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나왔고, 그 말을 들은 아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사 음식까지 사서 하니?”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며느리는 퇴근하자마자 왔다고 했다. 봉투 안에는 동그랑땡과 동태전, 나물 세 가지가 들어 있었다.
“어머니, 여기 잘한다고 해서 제가 주문했어요.”
나는 한 접시를 꺼내보다 말했다.
“요즘은 참 편하다. 제사 음식까지 돈 주고 사서 하니.”
화를 내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내가 며느리였을 때는 제사 며칠 전부터 시장을 보고 밤늦게까지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니 돈만 주면 완성된 음식이 오는 세상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며느리 표정이 순간 굳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괜히 한마디를 더했다.
“그래도 조상님 드리는 건데 몇 가지 정도는 직접 해야 정성이 있지 않겠니?”
그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이 처음으로 내게 따져 물었다
아들은 냉장고를 열어 내가 준비한 음식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엄마, 이거 다 언제 했어?”
“어제부터 조금씩 했지.”
그러자 아들이 다시 물었다.
“엄마도 힘들잖아.”
나는 그래도 제사인데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아들이 뜻밖의 말을 했다.
순간 기분이 상했다.
“내가 언제 시켰니? 며느리가 알아서 준비해온 거지.”
아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식탁에 놓인 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 오늘도 회사에서 일하고 왔어.”
“아침 7시에 나가서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해서 여기 온 거야. 그런데 여기 와서 또 몇 시간 전 부치는 게 당연한 거야?”
며느리는 옆에서 아들 팔을 잡으며 그만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다시 앉지 않았다.

아들의 마지막 한마디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이 말했다.
“엄마도 제사 때문에 평생 힘들었다고 했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명절과 제사가 돌아오면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전을 부쳤다. 남편과 아이들은 잠든 새벽에도 혼자 설거지를 한 적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내 며느리한테는 절대로 이렇게 안 해야지.’ 그런데 세월이 지나 내가 시어머니가 되자 어느새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제사 음식인데.”
“그래도 이 정도 정성은 보여야지.”
아들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엄마가 그렇게 힘들었던 걸 왜 며느리도 해야 하는 전통으로 만드는 거야?”
그 말에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며느리가 사온 전을 다시 바라봤다. 직접 부치지 않았다고 정성이 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느리는 퇴근 후 일부러 음식을 주문해 찾아오고 제시간에 제사에 참석하려고 서둘러 달려왔다. 정성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정성의 모양과 달랐던 것뿐이었다.

그날 나는 며느리에게 사온 전을 접시에 담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아들에게는 앉으라고 말했다.
제사가 끝난 뒤 남은 음식을 정리하는데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 다음에는 제가 조금 더 일찍 주문할게요.”
나는 처음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다음에도 그냥 사 와. 네가 직접 안 해도 된다.”
이 이야기는 실제 중년과 노년 가족의 제사 문화와 고부 관계에서 있었던 여러 사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전통은 가족을 이어주는 일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해지는 순간부터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내가 견뎌냈다고 다음 사람도 견뎌야 하는 것은 전통이 아니다. 내가 힘들었던 일을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 역시 어른이 가족에게 남길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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