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우리 집 김치가 짜다고 하길래..” 다음부터 김치를 안 보냈더니 아들이 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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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흔한 살인 나는 아들이 결혼한 뒤로 15년 동안 김치를 담글 때마다 아들네 몫을 따로 챙겼다. 며느리도 늘 맛있다고 했고 손주들도 할머니 김치라며 잘 먹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번 집에 놀러 온 며느리가 밥을 먹다가 “어머니 김치는 조금 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별말 아닌 척 넘겼지만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다음 김장부터 아들네 김치를 따로 담지 않았다
며느리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 입맛이 짜졌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서운했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고 무거운 김치통까지 챙겨 보내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돈을 받으려고 한 일도 아니고 자식들 먹이고 싶은 마음 하나로 해온 일이었다.
그런데 “짜다”는 말을 듣고 나니 괜히 내가 싫다는 음식을 억지로 보내고 있었나 싶었다. 그래서 그해 김장에는 우리 부부가 먹을 만큼만 담갔다.
남편이 물었다.
“아들네 것은 안 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짜다잖아. 이제 자기들 입맛에 맞는 거 사 먹으라고 해.”
그 뒤로 김치를 보내지 않았다.

몇 달 뒤 아들이 갑자기 전화했다
어느 저녁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그런데 요즘 김치 안 해?”
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왜? 너희는 짜서 싫다며.”
아들이 잠시 조용해졌다.
“네 아내가 그랬잖아. 우리 집 김치 짜다고.”
그러자 아들이 뜻밖의 말을 했다.
“엄마, 그게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나는 무슨 이야기냐고 물었다. 아들은 한참 망설이다 며느리가 그날 집에 돌아가면서 했던 말을 들려줬다.

며느리는 김치 맛을 흉본 것이 아니었다
며느리는 몇 달 전 내가 병원에서 혈압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식탁에서 김치를 먹다가 내가 국에도 소금을 더 넣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들에게 말했다고 했다.
“어머니 음식이 전보다 조금 짜진 것 같아.”
“김치가 맛없다는 게 아니라 어머니 입맛이 짜진 것 같아서 걱정돼.”
아들은 그 말을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이 말했다.
“그리고 당신 김치 안 온다고 며칠 전에 그러더라.”
“자기가 괜한 말을 해서 어머니 기분 상하신 것 같다고.”
며느리는 당시 “김치가 짜요”라고 말한 뒤 이런 말도 했었다.
“어머니, 요즘 음식 간 조금 싱겁게 드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서운한 마음 때문에 뒷말은 기억하지 않고 앞말만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며느리는 내가 만든 김치를 평가한 것이 아니라, 김치를 만든 사람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며느리에게 먼저 전화했다.
“김치 좀 가져갈래?”
며느리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이번에는 조금만 주세요.”
나는 또 서운해질 뻔했다. 그런데 며느리가 바로 덧붙였다.
“어머니 힘드시잖아요. 저희 먹을 만큼만 주세요.”
이 이야기는 실제 중년과 노년 가족,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있었던 여러 사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가족 사이에서는 같은 말도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릴 때가 있다. 특히 오래 서운했던 관계일수록 상대의 한마디에서 나쁜 뜻부터 찾기 쉽다.
가족 사이에 가장 아쉬운 오해는 사랑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해서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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