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은 극찬했는데, 제작진은 고발당했다”…‘암살자(들)’ 보는 것까지 정치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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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영화를 두고 반응이 이렇게 갈릴 수 있을까요.
박찬욱 감독은 영화의 구성을 보고 영리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을 상대로 고발장이 접수됐습니다.
출연 배우의 광고 댓글창까지 닫혔고, 영화에 추천사를 남긴 배우들도 공격받고 있습니다.
영화 ‘암살자(들)’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역사왜곡이냐, 영화적 상상력이냐”의 논쟁처럼 보였습니다.
지금은 영화를 만든 사람, 출연한 사람, 좋게 봤다고 말한 사람까지 한꺼번에 평가받는 분위기로 번졌어요.
그런데 이 논란을 따라가다 보면, 양쪽 모두 조금 불편해질 만한 질문이 남습니다.
박찬욱이 칭찬하면 역사적 의혹도 사실이 되는 걸까요.
반대로 영화를 비판하면 배우의 광고까지 공격해도 되는 걸까요.
박찬욱이 정말 극찬했나? 맞습니다. 다만 무엇을 칭찬했는지가 중요해요.
박찬욱 감독은 지난 26일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역사적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구성을 높이 평가했고,
허진호 감독의 장르적 연출을 보면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를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박찬욱이 영화를 호평했다는 이야기는 맞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곤란해집니다.
박찬욱 감독의 감상은 영화의 구성과 연출에 대한 평가였어요.
영화 속 가설이 실제 역사라고 확인해준 발언은 아닙니다.
유명 감독의 이름이 붙으면 작품에 대한 기대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역사적 근거를 따져보는 과정까지 생략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논란 터지니 지원사격?” 행사부터 이미 잡혀 있었습니다.
이 부분도 날짜를 보면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박찬욱 감독이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14일에 이미 발표됐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23일보다 앞선 날짜입니다.
지금 논란이 거세다는 이유로,
박찬욱 감독이 뒤늦게 나서 영화를 방어한 행사라고 받아들이면 경위가 달라지는 겁니다.
호평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호평을 지금 정치적 논쟁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따로 봐야 합니다.
감독이 좋은 영화라고 말한 순간부터 모든 비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논란이 생겼다고 이전의 영화적 평가가 자동으로 정치적 선언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대체 어떤 영화길래 이렇게 시끄러워졌을까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유해진은 형사를, 박해일은 신문사 사회부장을, 이민호는 신입 기자를 연기합니다.
이 가상의 인물들이 사건을 둘러싼 의문을 추적하는 이야기예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했지만, 기록을 그대로 옮긴 다큐멘터리는 아닙니다.
제작진도 여러 자료를 조사한 뒤 가상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한 극영화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 관람할 때도 실제 사건의 기록과 영화가 만든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속 인물이 어떤 가능성을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니까요.
논란의 핵심은 “실화를 영화로 만들었다”가 아닙니다.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이번에 특히 반발이 커진 이유는 사건의 배후에 다른 주체가 있을 가능성을 영화가 끌어왔기 때문입니다.
비판하는 쪽은 이미 수사와 재판을 거친 사건에 입증되지 않은 가능성을 더하면,
관객이 그것을 실제 역사처럼 기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작진은 여러 의문을 다루는 과정이지 특정한 결론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요.
이 차이를 알아야 논쟁이 이해됩니다.
만든 쪽은 “질문을 던졌다”고 말합니다.
비판하는 쪽은 “그 질문을 던지는 방식 자체가 특정한 의심을 심는다”고 보는 거죠.
영화가 결론을 말했는지뿐 아니라, 관객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었는지가 쟁점인 셈입니다.
그런데 허진호는 “박정희가 지시했다”는 생각에 선을 그었습니다.
논란에서 자주 빠지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은 29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내를 살해하도록 지시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진실을 알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고 설명했어요.
이 발언을 빼고 감독의 의도를 단정하면 공정한 설명이 되기 어렵습니다.
물론 감독이 그렇게 말했다고 관객의 비판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창작자가 의도한 것과 관객이 받아들인 것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필요한 건 실제 장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대사와 전개가 어떤 인상을 줬는지,
그 설정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무엇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고증 비판과 정치적 공격, 꼭 같은 편으로 묶을 수 있을까요.
역사학자 심용환도 이 영화의 역사적 근거와 시대 고증에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습니다.
동시에 영화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어요.
이 대목은 생각해볼 만합니다.
영화를 비판한다고 모두 상영 중단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
영화를 볼 자유를 말한다고 영화 속 의혹을 전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지금처럼 감상을 곧바로 정치적 입장으로 연결하면,
정작 작품을 구체적으로 비평할 자리가 좁아집니다.
연출은 좋았지만 역사적 근거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설정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배우의 연기는 좋게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감상까지 어느 한쪽에 줄 세울 필요가 있을까요.
제작진 고발, 여기서 확정된 것은 무엇일까요.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29일 허진호 감독과 제작사 대표,
작가 등을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로 의심하게 만들어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입니다.
고발 사실은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고발됐다는 말과 혐의가 인정됐다는 말은 다릅니다.
지금 단계에서 “범죄가 확인된 영화”처럼 표현하는 것도,
반대로 “고발은 아무 의미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앞서가는 판단입니다.
작품에 대한 비판, 제작진의 해명, 법적 판단은 각각 확인해야 합니다.
영화 비판이 왜 유해진의 광고 댓글창까지 갔을까요.
논쟁은 출연 배우의 일상적인 활동으로도 번졌습니다.
30일 유해진이 출연한 버거 브랜드의 유튜브 광고 영상에는 댓글 기능이 중지됐다는 안내가 표시됐습니다.
이민호의 SNS와 영화 추천사를 남긴 이영애·김고은의 계정에도 공격적인 댓글이 이어졌고요.
영화를 보지 않겠다는 선택과 작품에 대한 비판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의 외모를 조롱하거나,
영화를 좋게 봤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정치적 신념까지 확정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역사적 근거를 요구하는 논쟁이라면, 사람을 비난할 때도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영화의 어떤 장면이 문제인지 설명하는 대신 배우 개인을 공격하면,
원래 제기했던 비판의 설득력까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불매 때문에 망했다”도, “흥행했으니 맞다”도 성급합니다.
흥행 흐름도 하루 사이 바뀌었습니다.
‘암살자(들)’은 개봉 후 5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가 28일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정상을 내줬습니다.
그런데 29일 다시 1위로 올라섰습니다.
하루 관객은 6만1496명, 누적 관객은 169만5104명입니다.
그렇다면 불매운동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 이유에는 배우, 장르, 호기심, 상영 시간과 입소문 등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논란이 흥행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하루 순위만으로 확인할 수 없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봤다는 사실은 흥행 기록입니다.
영화 속 가설의 진위를 판정하는 자료는 아닙니다.
결국, 좋아해도 질문해야 하고 비판해도 근거가 필요합니다.
이번 논란을 따라가며 가장 경계할 부분은 영화 감상 하나로 사람을 정치적 편으로 나누는 분위기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을 높이 평가했다고 역사적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제작진이 고발됐다고 법적 결론이 나온 것도 아닙니다.
허진호 감독의 해명은 검토해야 하고, 영화의 고증과 설정도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우를 모욕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퍼뜨릴 이유는 없습니다.
좋게 봤다면 무엇이 좋았는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장면과 근거가 문제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이 남길 만한 것은 누가 어느 편인지의 명단보다,
실화를 다루는 영화에 우리가 요구할 기준일 겁니다.
#암살자들 #박찬욱 #허진호 #역사왜곡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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