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발 가발과 선글라스, 비 내리는 홍콩의 좁은 골목, 그리고 가게에 흐르던 음악. 1994년에 나온 이 영화는 개봉한 지 30년이 넘도록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극장에 걸립니다.
두 편의 이야기가 이어 붙은 구조
작품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입니다. 영화는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이어 붙인 구조를 택했습니다. 전반부는 실연당한 경찰 223과 금발 가발을 쓴 여인의 짧은 마주침을, 후반부는 역시 이별을 겪은 경찰 663과 그를 좋아하는 가게 점원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두 이야기는 직접 연결되지 않지만 같은 도시, 같은 공기 안에서 벌어지고, 엇갈림과 기다림이라는 정서로 묶입니다. 사랑의 시작보다 끝자락을 오래 들여다보는 영화입니다.

임청하 양조위 금성무 왕정문
출연진만 보면 당대 아시아 영화계의 별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었습니다. 임청하와 양조위, 금성무, 그리고 왕정문이 함께했습니다. 경찰 223을 연기한 금성무의 독백, 663을 맡은 양조위의 무표정, 금발 가발을 쓴 임청하의 실루엣, 그리고 가게 안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던 왕정문의 표정은 각각 하나의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이후 이 영화의 여러 장면이 광고에 활용될 만큼 화면 자체가 유행이 됐습니다.

감독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작품
이 작품은 왕가위 감독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영화로 평가받습니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스텝 프린팅으로 인물의 움직임을 늘어뜨리는 촬영, 도시의 네온을 그대로 끌어안은 색감은 이후 수많은 영화와 광고가 따라 했습니다. 이야기를 설명하기보다 분위기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낯선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홍콩 멜로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다는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4K 리마스터링으로 세 번 넘게 재개봉
국내 재개봉 이력도 길게 이어집니다. 2013년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들과 함께 다시 걸렸고, 2020년 진행된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2021년 3월 ‘중경삼림 리마스터링’으로 다시 개봉했습니다. 당시 한 멀티플렉스에서는 왕가위 특별전을 열어 감독의 대표작 11편을 함께 선보였습니다. 이듬해인 2022년 4월에도 재개봉이 이어졌습니다.

30주년에는 다섯 편이 함께 걸렸다
가장 최근의 큰 상영은 2024년이었습니다. 개봉 30주년을 맞아 이 작품을 비롯해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타락천사’, ‘2046’까지 다섯 편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나란히 극장에 걸렸고, 2월 말부터는 메가박스에서도 상영이 이어졌습니다. 관람 티켓 인증 이벤트까지 마련될 만큼 반응이 좋았습니다. 여름이 끝나고 공기가 선선해질 때 특히 생각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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