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주인공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30년이 넘도록 로맨틱 코미디의 교과서로 불립니다. 2016년 겨울에는 23년 만에 다시 극장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시애틀의 남자, 볼티모어의 여자
작품은 1993년작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입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시애틀에서 아들과 살아가는 샘, 그리고 동부 볼티모어에서 약혼자와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애니가 주인공입니다. 어느 밤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온 한 남자의 사연을 듣고, 애니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미국 대륙의 양 끝에 사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조금씩 움직이는 과정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사건은 거의 없고, 대신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가 이야기의 속도가 됩니다.

만나지 않는 로맨스라는 실험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특징은 두 주인공이 좀처럼 같은 화면에 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로맨스가 만남과 갈등, 화해로 이어지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서로를 상상하는 시간으로 대부분을 채웁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낯선 도시의 불빛, 크리스마스 이브의 야경 같은 장면들이 그 빈자리를 메웁니다. 결말에 도달했을 때의 감정이 유독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다림 자체가 설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2100만 달러로 만든 고전
제작비는 2100만 달러였습니다. 1993년 6월 북미에서 개봉해 그해 여름 흥행작 가운데 하나가 됐고, 이후 로맨틱 코미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연출은 노라 에프론 감독이 맡았습니다. 감정을 길게 설명하는 대사 대신 상황과 리듬으로 웃음을 만드는 그의 특기가 이 작품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조연들이 던지는 한마디가 장면의 공기를 바꾸는 순간도 여러 번 나옵니다.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 네 번의 호흡
주연은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입니다. 두 배우는 이 작품을 포함해 모두 네 편의 영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고, 그 조합 자체가 한 시대의 로맨틱 코미디를 상징하게 됐습니다. 두 사람이 가장 빛나던 시절의 연기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재개봉 당시에도 배우를 보러 극장을 찾는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두 배우의 이름이 나란히 불릴 때면 이 작품이 먼저 언급됩니다.

23년 만에 돌아온 겨울
국내 재개봉은 2016년 12월 29일이었습니다. 1993년 첫 개봉 이후 무려 23년 만이었고, 연말 극장가에서 고전 로맨스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소개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옛 로맨틱 코미디들이 잇따라 재개봉하면서 극장가에 복고 바람이 불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무렵의 도시를 담은 영화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더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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