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 좌우 진영이 서로 격분을 하면서 첨예한 대립하면서 미디어는 들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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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이 다시 꺼낸 7발의 미스터리 — 1974년 그날과 2026년의 양쪽 시선

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2026년 9월 23일 개봉·첫 주 100만 관객 돌파 /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 문세광 저격·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정부 공식 발표 재조명 / 7발의 총성·사라진 탄환·이건우 감식계장 양심선언·배명진 교수 소리공학 분석 / 국민의힘 “패륜적 범죄” vs 한국일보 사설 “배우·제작진 과도한 공격 자제” / 감독 “박정희 배후설 아니다” 해명 vs 사자명예훼손 고발 법적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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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포인트 1. 2026년 9월 23일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 첫 주 **관객 100만 명**을 돌파. 하이브미디어코프 제작.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사건**을 가상의 기자와 형사가 추적하는 미스터리물. ‘열린 결말’ 형태로 **문세광 단독 범행이라는 정부 공식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사 구조. 관람자들 간 호불호 극명하게 갈림 2. 사건의 핵심 쟁점 — **7발의 미스터리**. 1974년 당시 정부 공식 결론은 ‘**문세광 단독 범행, 스미스 웨슨 38구경 리볼버로 4발 발사**’. 그러나 녹화 영상·녹음 자료에서 **총 7발의 총성**이 감지된다는 분석이 2000년대 들어 제기됨. 2005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의뢰로 분석한 결과 — “문세광 4발, 경호원 3발”이며 “네 번째 총성 직후 육영수 여사가 쓰러지기 시작했다”는 결론. 다만 경호원 피격설은 가설로서 법적 결론은 여전히 ‘문세광 발사 4탄’ 3. **사라진 탄환** — 육영수 여사를 관통한 피격탄이 실제 문세광의 38구경 권총에서 발사됐음을 보여주는 **탄두 회수 → 인계 → 보관 → 탄도감정 → 감정결과의 완결된 증거사슬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 1989년 당시 서울시경 감식계장이던 **故 이건우**가 양심선언 — “탄흔에 기초할 때 문세광이 쏜 1탄은 오발, 2탄은 연단, 3탄은 태극기, 4탄은 천장에 맞았다 / 현장검증도 하기 전에 이미 청와대 경호실에서 탄두를 수거해 갔다 / 육 여사를 숨지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나 지금은 밝힐 수 없다.” 그는 1999년 10월 타계 4. 2026년 10월 현재 미디어의 양쪽 입장 — **비판 측(국민의힘·보수 성향)**: 주진우 의원 “유족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패륜적 범죄”, 박충권 의원(탈북민) “북한 영화의 한국판”, 나경원 의원 “영화 산업 구조가 좌파 세력에 장악”,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 10월 2일 제작진 사자명예훼손 고발. **옹호 측·중립 측**: 한국일보 10·3 사설 “배우·제작진 과도한 공격·정치 과잉 자제”, 허진호 감독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로 설정한 영화가 아니다”, 이동진 평론가 “평가 철회 없음·박정희 배후설 주장 아님”, 역사학자 이덕일 “잘 만든 정치영화·윗선이 박정희라는 내용 없다” 5. 사회적 파장 — 감독과 출연진은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을 취소**(인신공격·악성 댓글). 영화계는 창작 위축 우려. 법조계 쟁점 — 영화 속 의혹이 ‘사실 적시’에 해당하는지, 관객이 허구로 받아들이는지, 유족의 사자명예훼손 형사절차와 인격권 침해 민사소송 병행 가능성. 깨알소식이 다룬 하영 친일 논란의 ‘연좌제’ 논쟁과도 결이 겹치는 — **역사를 어떻게 다시 다룰 것인가**라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물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름 |
1. 9·23 개봉 100만 — 영화 ‘암살자(들)’이 다시 꺼낸 것
2026년 9월 23일.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했다. 하이브미디어코프 제작.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사건**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서스펜스물이다. 이 영화는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가상의 기자와 형사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 그들이 중앙정보부로 추정되는 세력에게 추적을 방해받는 구조를 통해 — 정부 공식 발표인 ‘문세광 단독 범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사를 펼친다. 영화는 ‘**열린 결말**’ 형태를 취하고 있어 특정 결론을 단정하지 않지만, 관람자들의 상상 공간이 ‘박정희 전 대통령·중앙정보부 배후설’까지 열려있는 구조로 평가된다. 영화는 개봉 첫 주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관람자들 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논란의 불씨가 본격 커진 것은 개봉 나흘 뒤인 9월 27일이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암살자(들)’은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인 것처럼 왜곡했다”며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유족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패륜적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날 탈북민 출신 박충권 의원은 “이 영화는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정(중앙정보부)을 시켜서 한 것’이라는 **북한 영화의 한국판**”이라고 날을 세웠고, 대구경북(TK) 4선 김상훈 의원도 “역사 인식을 비트는 극편향적 망동”이라고 가세했다. 영화의 서사 자체가 아니라 — 영화가 열어둔 ‘상상의 공간’이 결과적으로 특정 인물에 대한 명예 손상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었다.
감독과 제작진의 입장은 분명했다. 허진호 감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로 설정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공식 해명했다. 평론가 이동진도 자신의 영화 평가에 대해 “‘암살자(들)’ 평가 철회 없다 / 박정희 배후설 주장이 아니다”라며 영화의 서사 구조를 짚었다.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도 10월 2일 “**잘 만든 정치영화 / 윗선이 박정희라는 내용 없다**”는 평가를 내놨다. 한국일보 10월 3일 사설은 결정적이었다 — “배우와 제작진을 겨냥한 집회와 공격으로 행사가 취소되는 등 과도한 압박이 벌어졌다 / 정치 과잉 자제를.” 감독과 출연진은 인신공격과 악성 댓글이 이어지자 결국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을 취소**했다. 영화 한 편이 2026년 한국 사회의 가장 날선 정치·역사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셈이다.
2. 1974년 8·15 그날 — 정부 공식 발표와 7발의 총성
영화가 꺼낸 1974년의 그 사건을 다시 되짚어보자.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제29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리고 있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는 도중, 재일교포 **문세광**이 뒷좌석에서 뛰어나와 권총을 들고 연단을 향해 돌진했다. 혼란 속에 총성이 울렸고, 박 전 대통령 옆에 앉아 있던 **육영수 여사가 머리에 치명상을 입고 숨졌다**. 객석의 합창단원이던 장봉화 양도 이날 사망했다. 당시 특별수사본부의 공식 결론은 분명했다 — 북한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지령을 받은 문세광이 광복절 연설 중이던 박 전 대통령을 저격했지만 미수에 그쳤고, 대신 옆에 앉아 있던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는 것이다. 문세광은 그해 **12월 20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정부 공식 발표의 세부 사실은 이렇다. 문세광의 권총은 **스미스 웨슨 38구경 리볼버**였고, 5발이 장전돼 있었다. 이 가운데 **한 발은 불발탄으로 약실에 남아 있었다**. 즉 문세광이 발사한 총탄은 모두 **4발**이었다는 결론이다. 발사된 4발의 궤적은 — 첫째, 문세광 자신이 바지 주머니에서 총을 빼내다 **자신의 허벅지에 오발**. 둘째, 연단 뒤로 피신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향했으나 **연단 나무에 맞음**. 셋째, 무대 뒤 **태극기 근처에 맞음**. 넷째, 그 사이에 **육영수 여사의 머리에 치명상**을 입혔다는 것이 수사당국과 법원의 판단이다. 그 외에 박종규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이 문세광을 겨냥하다가 빗나가 합창단원 장봉화 양을 맞혔다는 사실이 공식 발표에 포함됐다.
사용자가 던진 핵심 질문 — “진짜 0.8초에 4발을 쏠 수는 없었나? 총탄 소리는 왜 났는가?” — 는 바로 이 지점의 쟁점이다. 2000년대 이후 공개된 녹화 영상과 녹음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건 현장에서 **총 7발의 총성**이 감지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세광의 권총에서 발사된 4발로는 설명되지 않는 **추가 3발의 총성**이 녹음돼 있다는 것이다. 당시 행사장에서는 경호원들만이 총기 소지와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 이 추가 총성이 경호원들의 응사 소리라는 분석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 응사가 문세광 제압용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궤적을 그렸는지에 대한 완결된 기록은 공식 발표에 나와 있지 않다. 이것이 2000년대 이후 ‘7발의 미스터리’로 불리게 된 쟁점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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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발의 총성 — 정부 공식 발표와 분석 가설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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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명진 교수와 이건우 감식계장 — 사라진 탄환의 그림자
2000년대 이후 ‘7발의 미스터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는 두 가지다. 첫째는 **故 이건우 전 서울시경 감식계장의 양심선언**이다. 그는 사건 당시 수사요원으로 현장검증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는 1989년 월간잡지와 인터뷰에서 폭탄 같은 증언을 내놨다 — “탄흔에 기초할 때 **문세광이 쏜 1탄은 오발, 2탄은 연단, 3탄은 태극기, 4탄은 천장**에 맞았다 / 육 여사를 숨지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나 지금은 밝힐 수 없다.” 즉 그가 현장에서 확인한 탄흔으로는 — 문세광이 발사한 4발 중 어느 것도 육 여사의 궤적에 맞지 않는다는 증언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현장검증도 하기 전에 이미 청와대 경호실에서 탄두를 수거해 갔다**”고 밝혀, 청와대 경호실이 피격탄 처리에 관여했음을 시사했다. 이 전 계장은 ‘숨지게 한 사람’이 누군지는 끝내 공개하지 않은 채 **1999년 10월 타계**했다.
둘째는 2005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 팀에게 의뢰한 소리공학 분석이었다. 사건 당시 녹화된 비디오와 총성이 녹음된 테이프를 사용해 총소리를 분석한 결과, 배 교수는 “**문세광이 쏜 총소리는 모두 4발이었고, 나머지 3발은 경호원들의 총에서 들린 소리였다**”고 2005년 2월 11일 밝혔다. 더 결정적인 분석은 다음이다 — “경호원들이 쏜 총은 네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였는데 **네 번째로 쏜 총소리 직후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다**.” 배 교수는 “0.17초 이후인 7.08초부터 총격으로 인한 미동이 시작돼 오른쪽으로 넘어지는 것을 볼 때 이 탄환에 맞은 것이 틀림없다”며 “문세광이 쏜 세 번째나 여섯 번째 총탄은 객석과 연단과의 거리, 소리의 속도 등을 종합해 계산해본 결과 육 여사가 맞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분석은 1989년 이건우 전 계장의 양심선언 내용과 결과적으로 일치하는 지점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 두 분석은 모두 확정 판결이 아니라 **의혹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JBC뉴스 심층취재가 10월 보도에서 짚은 핵심은 — 육영수 여사를 관통한 피격탄이 실제 문세광의 38구경 권총에서 발사됐음을 보여주는 **탄두의 회수 → 인계 → 보관 → 탄도감정 → 감정결과가 하나의 증거사슬로 이어지는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시 수사당국과 법원은 ‘문세광이 발사한 제4탄이 육 여사를 숨지게 했다’고 판단했지만, 이후 제기된 의혹은 그 확정 판결과 별개의 영역으로 남았다. 결국 **육 여사를 숨지게 한 탄환이 문세광의 38구경 권총에서 발사된 것임을 입증할 물리적 물증(탄두)이 사라진 셈**이라는 지적이다. 영화 ‘암살자(들)’이 던진 상상의 공간은 — 바로 이 ‘사라진 탄환’이라는 역사적 틈새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만 이것이 곧 ‘박정희 배후설’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 영화 감독·평론가·역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지점이다.
4. 2026년 10월의 양쪽 시선 — 패륜 vs 과도한 공격
현재 2026년 10월 한국 사회에서 영화를 둘러싼 양쪽 입장은 극명하게 갈린다. **비판 측**의 주요 목소리는 보수 정치권에서 나온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유족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패륜적 범죄”라고 못박았고, 박충권 의원은 “북한 영화의 한국판”이라고 비판했으며, 김상훈 의원은 “극편향적 망동”이라고 가세했다. 나경원 의원은 영화 산업 구조 자체를 겨냥했다 — “영화 산업의 구조 자체가 좌파 세력에 장악돼 있고, 거기에 협조해야만 하는 자본들이 함께 하는 것 아니냐 / 영화 시장에 좌파 세력의 무언의 압력이 가해진 것.” 10월 2일에는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영화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보수 측의 상영 중단 요구와 국정감사 출석 요구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옹호 측·중립 측**의 목소리는 영화계와 언론 사설 중심이다. 허진호 감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로 설정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암살자(들)’ 평가 철회 없다 / 박정희 배후설 주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10월 2일 “**잘 만든 정치영화 / 윗선이 박정희라는 내용 없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는 “육영수 저격사건, 의혹 있는 건 사실”이라고 짚으면서도 — 영화의 서사 자체가 특정인을 배후로 지목하지는 않았다고 봤다. 한국일보 10월 3일 사설은 결정적 균형 지점을 짚었다 — “배우와 제작진을 겨냥한 집회와 공격으로 행사가 취소되는 등 **과도한 압박이 벌어졌다** / 정치 과잉 자제를.” 김성수 영화평론가는 더 근본적인 분석을 내놨다 — “**노년 세대에겐 아직도 육영수라는 신화가 깨지지 않았다 / 신화가 일상의 서사로 내려올 때 생기는 고통을 한 번도 겪지 않았기에 논란이 더욱 커지는 것**.”
법적 공방의 전망도 복잡하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 영화 속 의혹이 ‘사실 적시’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며, 관객이 이를 **허구로 받아들이는지도 판단 요소**가 된다. “픽션 고지만으로 면책이 되지는 않으며, 민사책임은 별개”라는 것이 법조계의 신중한 입장이다. 유족이 나설 경우 — 사자명예훼손의 형사 절차와 인격권 침해의 민사 소송이 함께 진행될 수 있다. 또한 영화계에서는 — “노무현 건드리면 고소, 박정희 모욕하면 표현의 자유?”라는 유사 논쟁이 과거에도 반복돼 왔다는 지적이 함께 나오고 있다. 즉 한국 사회에서 특정 역사적 인물에 대한 창작물의 허용 범위가 —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게 적용돼 왔다는 비판 역시 이번 논쟁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5. 열린 결말이 던진 질문 — 역사와 창작 사이
이번 ‘암살자(들)’ 논쟁이 한국 사회에 던진 근본적 질문은 — **역사와 창작의 경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이다. 영화가 ‘정설’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가, ‘열린 결말’이 결과적으로 특정인에 대한 명예 손상으로 이어졌을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유족의 아픔과 창작자의 표현 자유는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가 — 이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번 논쟁으로 다시 드러났다. 깨알소식이 최근 다룬 **배우 하영 증조부 안상호 친일 논란**에서도 비슷한 결의 질문이 제기됐다. 그때는 ‘후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연좌제 논쟁이었다면, 이번에는 ‘창작자의 표현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하는 역사 서사의 책임 논쟁이다.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 모두 한국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하는 같은 결의 물음에 닿아 있다.
사용자가 던진 본질적 질문 — “진짜 0.8초에 4발을 쏠 수는 없었나? 총탄 소리는 왜 났는가?” — 는 결국 1974년의 사실 자체에 대한 재검토 요구다. 배명진 교수의 소리공학 분석과 이건우 전 감식계장의 양심선언이 보여주듯 — 7발의 총성이라는 음향 증거와 ‘사라진 탄환’이라는 물증 공백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 ‘박정희 배후설’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점 — 이것이 영화 감독·평론가·역사학자가 공통적으로 짚는 지점이다. 역사의 틈새를 창작으로 메우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창작이 특정인을 암시하는 방식일 때는 — 더 엄격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법조계의 신중한 입장이다. 영화가 ‘열린 결말’ 형태를 취했다는 사실 자체가 — 그 책임의 경계를 어떻게 그을지에 대한 창작자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 이번 논쟁이 1974년 사건의 ‘사라진 탄환’을 다시 공론장에 올려놓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하다. 역사학자 이덕일은 “**육영수 저격사건, 의혹 있는 것은 사실이고 다시 조사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즉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 1974년 사건의 미완된 증거사슬을 완성하기 위한 재조사 요구가 2026년 10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깨알소식이 지금까지 다뤄온 시리즈들 — [삼성 성과급 사태] 3부작, 정의선 5년 포석, K-불교, 6·3 지방선거 4부작, 선관위 6년 시계열, 앤트로픽 1,440조 원 투자, 삼성 글로벌 1위, FIFA-UEFA 보도, 8·26 네팔 홍수, 하영 친일 논란, 2026 아시안게임 종합까지 — 한국 사회의 현재가 과거와 분리될 수 없음을 반복해 확인해온 흐름의 연장선에서, 이번 ‘암살자(들)’ 논쟁 또한 자리잡는다.
영화 ‘암살자(들)’은 결국 어떤 결론도 단정하지 않은 채 — 1974년의 ‘사라진 탄환’이 2026년 한국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보여줬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 영화 비평가의 몫도, 정치권의 몫도, 유족의 몫도 아니다. 결국 그 답은 — **한국 사회 전체가 과거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긴 숙제로 남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 영화 한 편이 던진 상상의 공간이 2026년 10월의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든 이 풍경 자체가 — 한국 현대사의 미완된 장면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줬다는 점이다. ‘암살자(들)’의 열린 결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챕터는 결국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 질문에 응답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로 설정한 영화가 아니다.” — 허진호 감독 (영화 ‘암살자(들)’ 공식 해명)
“‘암살자(들)’은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인 것처럼 왜곡했다.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유족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패륜적 범죄다.” —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 (2026년 9월 27일 페이스북)
“배우와 제작진을 겨냥한 집회와 공격으로 행사가 취소되는 등 과도한 압박이 벌어졌다. 정치 과잉 자제를.” — 한국일보 사설 (2026년 10월 3일)
“탄흔에 기초할 때 문세광이 쏜 1탄은 오발, 2탄은 연단, 3탄은 태극기, 4탄은 천장에 맞았다. 육 여사를 숨지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나 지금은 밝힐 수 없다. 현장검증도 하기 전에 이미 청와대 경호실에서 탄두를 수거해 갔다.” — 故 이건우 전 서울시경 감식계장 (1989년 월간잡지 인터뷰 / 1999년 10월 타계)
“노년 세대에겐 아직도 육영수라는 신화가 깨지지 않았다. 신화가 일상의 서사로 내려올 때 생기는 고통을 한 번도 겪지 않았기에 논란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 김성수 영화평론가
| ※ 본 기사는 파이낸셜뉴스·한국일보·중앙일보·프레시안·노컷뉴스·매일노동뉴스·JBC뉴스·위키트리·코리아데일리 등의 보도와 1974년 특별수사본부 공식 발표, 2005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배명진 교수 분석, 1989년 故 이건우 전 서울시경 감식계장 양심선언, 2005년 공개된 외교문서, 한국일보 10월 3일 사설, 역사학자 이덕일 소장 분석 등을 종합해 작성됐다. 1974년 사건의 공식 결론은 ‘문세광 단독 범행’이며, 본 기사가 소개한 소리공학 분석과 양심선언 등은 공식 판결과 별개로 제기된 의혹 영역에 해당한다. 영화 ‘암살자(들)’은 열린 결말 형태의 창작물이며 특정인을 배후로 지목하지 않았다는 제작진의 공식 해명이 있다.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의 10월 2일 명예훼손 고발 등 법적 공방은 향후 결과가 변동될 수 있다. 본 기사는 깨알소식의 하영 친일 논란 보도·선관위 6년 시계열 등 역사·사회 보도의 흐름을 잇는 문화·시사 심층 기사다. |
박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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