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서중학교 수학여행 버스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이야기가 56년 만에 방송을 통해 재조명됐다. 이 사고는 해방 이후 최악의 버스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됐으며, 당시 희생된 46명의 학생과 그 가족들의 아픔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방송에서는 사고의 배경과 구조적 문제점, 그리고 그날의 진실이 상세히 다뤄졌다. 1970년 10월, 서울 마포 경서중학교 3학년 학생 470여 명과 교사 11명이 충남 아산 현충사로 당일치기 수학여행을 떠났다. 9개 반 학생들은 버스 7대에 나눠 탑승했으나, 정원 39명인 버스에 70명 이상이 탑승하는 등 심각한 과밀 상태였다. 특히 3~4반이 탑승한 3호차에는 77명이 몰려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건널목은 하루 5,000대가 오가는 곳이었지만, 차단기나 관리원이 없는 3종 건널목으로 방치돼 있었다. 철도청은 건설부와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시야를 가리는 정미소를 그대로 두었고, 예산 부족으로 건널목 등급도 높이지 못했다. 이런 환경은 대형 참사의 위험을 키웠다.
1970년 10월 14일, 수학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던 오후 4시께, 3호차 버스가 철길 건널목에 진입했다. 경보기 소리가 울렸지만 버스는 멈추지 않았고, 달려오던 기차와 충돌해 약 80m를 끌려간 뒤 멈췄다. 충돌 직후 버스 앞쪽 엔진과 연료통이 폭발해 차량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찌그러진 차체와 창문에 설치된 보호 창살이 학생들의 탈출을 막았고, 인근 주민과 뒤따르던 학생들이 돌로 창문을 깨며 구조에 나섰으나, 거센 불길과 연기 탓에 구조는 쉽지 않았다.
이 사고로 버스 기사와 학생 등 46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쳤다. 사고 직후 일부 언론은 인솔 교사들이 학생을 방치하거나 사고 직후 도망쳤다고 보도했으나, 생존자들은 교사들이 늦게 온 학생을 찾으러 간 사이 3호차가 임의로 출발해 버스에 타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 사실은 56년 만에 방송을 통해 다시 알려졌다.
참사 다음 날 새벽, 경서중학교에는 임시 안치소가 마련됐다. 시신의 훼손이 심해 유족들도 가족을 알아보기 어려웠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원들이 파견돼 치아 감식으로 45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학생 한 명이 추가로 숨지면서 최종 사망자는 46명에 이르렀다. 사고 이틀 뒤에는 학교에서 합동 장례식이 거행됐다.
이듬해 졸업 앨범에는 희생된 학생들의 사진과 함께 ‘사라진 별들’이라는 문구가 남았다.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고 트라우마로 동창들과 연락을 끊었던 한 생존자는 56년 만에 방송을 통해 친구들과 재회했다. 살아남은 학생들은 매년 10월 묘역을 찾아 친구들을 추모하며, 그날의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 있다.
방송에 출연한 정이랑, 원어스 건희, 볼빨간사춘기 안지영은 사고의 전말을 듣고 깊은 슬픔을 드러냈다.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은 경서중학교 참사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희생되는 비극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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