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친구에게서 갑자기 급한 돈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는 순간이 있다. 오랜 세월 쌓아온 우정을 생각하면 단번에 거절하기 미안하고, 그렇다고 선뜻 큰돈을 건네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고 불안해진다.
젊은 시절에는 친구 사이에 일어나는 금전 거래쯤은 서로 이해하고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다고 믿곤 한다. 하지만 50대에 접어들면 단 한 번의 잘못된 돈거래가 수십 년간 고이 쌓아 올린 소중한 인간관계를 순식간에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내 삶을 지키는 기준 설정
친구와의 금전 문제에서 가장 자주 일어나는 실수는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한계를 정하지 않은 채 상대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다. 백만 원이 필요하다고 할 때 그 금액을 다 맞춰주는 것이 의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돈을 건넬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기준은 상대의 사정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범위다. 잃어버려도 내 일상이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가 적당하다. 내가 편안하게 내줄 수 있는 액수가 삼십만 원이라면 그만큼만 건네는 편이 훨씬 지혜롭다. 무리해서 빌려주었다가 제때 받지 못하면 결국 원망이 쌓이고 사람마저 잃게 된다.
단호하고 솔직한 거절 표현
거절할 말을 미리 준비해 두지 않는 점도 관계를 망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상대의 요청을 거절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미안함 때문에 얼버무리거나 애매하게 대답하면 서로에게 더 큰 오해가 생긴다.
“나도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도와주기가 어렵다”라는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길게 사정을 변명하거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이 정도로 거절했다고 해서 서운해하며 돌아설 친구라면 처음부터 그 관계의 깊이가 깊지 않았던 셈이다. 진정한 친구라면 단호한 거절 한 번으로 관계를 끊어내지 않는다.
약속 날짜와 기록의 필요성
빌려줄 때 돌려받을 날짜나 방법을 명확히 정하지 않는 일은 가장 깊은 후회로 남는다. “편할 때 천천히 줘”라는 말은 겉으로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는 잊어버리고 나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난감한 상황을 만든다.
돈을 건넬 때 상호 간에 정확한 만기 날짜를 정하고 정중하게 문자로 남겨두는 편이 서로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준다. 독촉하는 것 같아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기한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면 “지난번에 빌려준 돈 이번 달에 받을 수 있을까?”라고 먼저 솔직하게 물어볼 수 있어야 서로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재산보다 소중한 것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진짜 친구다. 그렇기 때문에 금전 문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욱 명확하고 단호하게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돈을 건네더라도 내가 감당할 만한 선에서만 마음을 표하고, 안 되는 상황이라면 솔직하게 거절하며, 건넬 때는 약속을 분명히 하는 태도가 관계를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켜주는 최선의 지혜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