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넓은 초원에 여러 마리의 코끼리가 모여 있다면, 한 코끼리는 어떻게 특정한 상대를 불러낼 수 있을까요?
사람처럼 이름을 부르는 것일까요?
2024년 국제 학술지 ‘Nature Ecology & Evolution’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아프리카코끼리가 특정 개체를 지칭하는 이름과 유사한 소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증거가 제시됐습니다.
연구진은 코끼리의 호출 소리를 분석했을 뿐 아니라, 실제 코끼리에게 녹음된 소리를 들려주고 반응까지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코끼리는 자신을 향했던 호출과 다른 개체를 향했던 호출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 코끼리 울음소리에는 상대를 구분하는 정보가 있었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학교의 마이클 파르도(Michael Pardo) 등이 참여한 연구진은 케냐의 야생 아프리카코끼리가 내는 호출 소리를 분석했습니다.
연구에는 삼부루와 암보셀리 지역에서 수집한 469개의 호출이 사용됐습니다.
연구진은 기계학습을 활용해 소리의 음향적 특징만으로 호출을 받는 코끼리가 누구인지 예측할 수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분석 결과, 호출 소리에는 수신 개체를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단순히 모든 코끼리가 비슷한 울음소리를 낸다는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였습니다.

■ 자기에게 하는 소리를 들려주자 반응이 달라졌다
연구진은 음향 분석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야생 코끼리에게 이전에 녹음한 호출 소리를 재생하는 실험도 진행했습니다.
한 조건에서는 해당 코끼리 자신을 향해 사용됐던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다른 조건에서는 같은 발신자가 다른 코끼리를 향해 사용했던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이렇게 하면 단순히 익숙한 발신자의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호출을 받는 대상에 관한 정보가 영향을 주는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실험에서 코끼리들은 자신을 향한 호출에 더 강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결과는 코끼리가 호출 소리에서 자신이 대상인지 구별할 수 있다는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물론 사람처럼 자신의 이름이라는 개념을 이해한다고 입증한 것은 아닙니다.

■ 단순히 상대의 목소리를 흉내 낸 것은 아닐까?
동물의 의사소통에서 특정 개체를 부르는 행동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큰돌고래는 상대의 특징적인 휘파람 소리를 모방해 특정 개체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이름은 보통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내는 소리를 흉내 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코끼리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연구진은 코끼리의 호출이 수신자의 소리를 단순히 모방하는 방식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즉, 특정 개체를 지칭하는 음성 표지가 상대의 소리와 반드시 닮아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코끼리의 호출은 사람의 이름과 비슷한 기능을 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그렇다면 코끼리도 정말 이름을 지어줄까?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연구는 코끼리가 특정 개체를 지칭하는 소리를 사용한다는 증거를 제시했지만, 코끼리 사회에서 그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공유되는지까지 모두 밝혀낸 것은 아닙니다.
한 코끼리가 다른 코끼리에게 이름을 지어주는지, 여러 코끼리가 같은 상대를 언제나 동일한 소리로 부르는지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발신자가 같은 수신자를 부를 때 비슷한 음성 표지를 사용하는지에 관해 혼재된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코끼리에게 인간과 동일한 이름 체계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 코끼리의 소리가 특별한 이유
아프리카코끼리는 가족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동물입니다.
멀리 떨어진 개체와도 낮은 주파수의 소리를 이용해 의사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특정 상대를 구분해 부를 수 있는 능력은 개체 사이의 의사소통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2024년 연구가 보여준 것은 코끼리가 단순히 무리를 향해 소리를 내는 데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소리에는 ‘누구를 향해 부르는가’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그 소리를 사람의 이름처럼 완전히 해석할 수는 없지만, 코끼리의 의사소통이 생각보다 정교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과학적 발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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