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4일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전격 방문했다. 이번 방중에서 김 위원장은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과 만나 항미원조기념관을 참관하고, 이어 단둥의 버스공장을 둘러보며 생산시설과 완성차를 직접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측이 마련한 연회에도 참석한 뒤, 다시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귀국했다.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의 방문이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76돌’을 즈음한 것임을 전했다.
북한과 중국의 밀월 분위기가 다시 한 번 부각됐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북한 당정 간부들이 전날 6·25전쟁 참전 76주년을 맞아 평양 우의탑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을 기리는 헌화를 진행했다고 전하며, 양국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다. 최근 북한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으로 안보적 지원을 확보한 가운데, 중국과의 경제 협력도 강화하는 ‘안러경중’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단둥 방문은 비무장지대(DMZ) 지뢰폭발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시점에 이뤄졌다. 한국에는 북중 간 우호를 과시하고, 미국에는 중국을 배경으로 북미회담 재개를 타진하는 다목적 행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특히 김 위원장의 ‘당일치기’ 일정과 차량을 이용한 이동은 북중 간 실무 방문이 언제든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신압록강대교를 건너간 것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유엔 제재를 일부 위반하더라도 중국과의 협력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버스공장 시찰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생산시설을 둘러본 점은 대북제재 무력화와 실질적 협력 강화 의지를 시사한다는 평가다.
이번 방중의 시점이 다음 달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남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미국을 견제하고 중국의 지원을 재확인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있다. 중국 역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보여줌으로써 미국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위원장의 방중이 북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 위원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동맹국에 책임을 분담시키는 전략을 펴는 가운데, 중국은 블록 내 불안정성 관리를 위해 북한과의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고 진단했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에도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네 차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회담한 바 있다. 당시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대미 협상력을 높였고,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번 방중이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사전 조율이라기보다는, 북중 간 교역과 경제협력 확대에 더 방점이 찍혔다는 시각도 있다. 김 위원장이 단둥 버스공장을 시찰하고, 북한 매체가 방문 장소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점은 북한이 대중교통 등 상용차 공급에 관심이 있음을 시사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는 운송수단의 대북 수출을 금지하고 있으나, 북한이 중국의 추가 경제 지원 가능성을 타진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북한은 최근 유엔 안보리에 서한을 보내 지뢰폭발 사건이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며, 영토 침범이나 도발행위가 있을 경우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한국 정부 역시 북한군의 지뢰폭발이 정전협정 위반임을 지적하는 서한을 안보리 의장에게 전달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방중 직전 사망설이 돌았던 상황에서 이번 행보를 통해 건재를 과시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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