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완료] 나라 배신 조선인 순사 알고보니 만주와 국내서 맹활약한 독립운동가](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10/CP-2025-0110/image-c1c637cc-57a0-4b2d-8f4e-0280dfab5cd6.jpeg)
일제강점기 조선인 순사 ‘나카무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가들의 이동을 도왔던 최석순 지사의 사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겉으로는 조선인들을 엄하게 단속하는 일본 경찰로 행세했지만, 실제로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독립운동가들을 이동시키고 독립운동 자금의 전달을 지원한 인물로 알려졌다.
최석순의 활동은 독립운동가 정정화 선생의 회고를 통해 전해졌다. 당시 중국 단둥은 국내에서 마련한 독립운동 자금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전달하는 주요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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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운반을 맡은 정정화 선생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국경을 넘나들며 임시정부의 활동을 뒷받침했다. 이 과정에서 최석순은 일본 경찰의 신분을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이 감시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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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로서 조선인들을 엄하게 취조하는 모습을 보이며 의심을 피하고, 필요한 인물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독립운동을 지원하면서도 자신의 정체를 감춰야 했던 만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실제 활동은 달랐다.
그는 독립운동가들을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으로 위장해 신의주행 열차와 상하이행 여객선에 태우는 방식으로 이동을 지원했다. 정정화 선생 역시 최석순의 여동생으로 위장해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도움은 국경을 넘나들며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해야 했던 이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제의 감시가 촘촘했던 상황에서 이동 경로를 확보하고 신분을 위장하는 일은 자금 전달의 성패와도 연결되는 문제였다.
최석순의 활동은 독립운동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무장투쟁이나 공개적인 항일운동뿐 아니라, 독립운동가를 숨겨 이동시키고 자금을 전달하도록 돕는 일도 독립운동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역할이었다. 특히 일본 경찰이라는 신분을 활용한 그의 활동은 일제의 감시 체계 안에서 그 허점을 이용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그의 행적은 오랫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신분을 숨긴 채 활동했던 특성상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웠던 데다, 당시의 지원 활동 역시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정정화 선생의 회고록 ‘녹두꽃’에 관련 경험이 담기면서 최석순의 활동이 알려지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 회고록은 독립운동 자금 운반 과정과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준 인물들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신분이 드러날 위기에 놓인 최석순은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와 만주 일대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이동을 지원하고, 이후 해외에서 활동을 이어간 그의 행적은 독립운동이 다양한 형태의 협력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최석순의 이야기는 독립운동의 역사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들의 활동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감시를 피할 통로를 마련하고, 사람과 자금을 연결하며, 위험을 감수하고 동료를 도왔던 이들의 역할 역시 독립운동을 지탱한 중요한 기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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