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짝퉁 가수 딸은 조회 유튜버라는 이 모녀

필더무비 2024.02.17 조회수

추천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최근 노재원의 다작 출연으로 코로나 시대 개봉해 아쉽게 관객 몰이가 어려웠던 영화를 다시 봤다.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모녀 관계를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꿈’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그 중 노재원은 이미테이션 가수로 나와 짙은 화장에 묘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존재감을 남겼다.

노재원은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의 ‘서완님’으로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영화 <세기말의 사랑>에서 회사돈을 횡령하는 구기사로 나왔으며,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o난감]서도 나쁜남자 하상민으로 나왔다. [오징어 게임] 시즌2에도 출연 예정인 라이징 스타다. [살인자o난감]에는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윤시내 역을 천연덕스럽게 맡은 오민애가 이탕의 엄마이자 교회 권사로 나왔다. 이 영화를 다시 볼 이유가 생겼다! 구작도 자세히 다시 보자!

윤시내 찾다가 딸과 싸우다!

어느 날 마지막 콘서트를 앞두고 윤시내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들썩거렸고 어디에도 윤시내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스타가 사라지자 이미테이션 가수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윤시내 콘서트에 참여하게 된 연시내 순이(오민애)도 무대에 서지 못했으며 곧 일자리를 잃게 된다. 하늘에 떠 있는 별과 위성처럼 별이 기울자 떨어지고 만 것이다.

한편, 엄마라기보다 동거인 수준으로 데면데면한 딸 장하다(이주영)는 관종(관심에 목마른 자) 유튜버로 조회수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 얼마 전 헤어진 남자친구와 재결합 콘셉트로 영상을 기획했다가 망하고 소재를 찾던 중, 거나하게 취해 라이브 방송에 난입한 엄마 윤시내의 등장으로 조회 수가 폭발하는 기회를 맞는다.

때마침 연시내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운시내(노재원)와 대화를 엿듣게 된 하다는 조회 수를 올리려는 심산으로 윤시내를 찾는 모험에 동참하게 된다. 과연 남보다 더 못한 모녀의 여행길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어디에서도 못 적 없는 캐릭터

영화는 7080 디바 윤시내와 MZ 세대가 만나 특별함을 선사한다. 한 번쯤 들어봤을 노래지만 MZ 세대에게는 그저 원로 가수일 뿐 크게 와닿지 않았을 전설의 디바다. 거리감이 있는 모녀 사이처럼 가수 윤시내와 유튜버는 좁힐 수 없는 세대 차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테이션 가수를 연기한 오민애와 유튜버를 연기한 이주영의 전혀 다른 매력이 충돌하자 관객은 이들의 삶으로 빠져들게 된다. 좋아하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 몰입하는 것들이 주는 묘한 이끌림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20년 전 윤시내를 좋아하다 못해 단단히 미쳐 있는 순이는 연시내로 활동해왔다. 드디어 성덕의 꿈을 이루기 직전 콘서트 취소로 좌절되어 버려 속상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속상한 건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할 줄 아는 것도 모두 윤시내 따라 하기였던 순이는 조롱 섞인 딸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간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윤시내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도 가짜지만 진짜라고 믿으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진짜 같은 가짜, 나의 별은 스스로 떨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장하다는 어릴 적 자기보다 더 관심 대상인 윤시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어쩌면 엄마에게 받지 못한 관심을 익명의 사람들에게 받고 싶어 유튜버가 되었을지 모른다. 실버 버튼을 받을 정도로 진심이었지만 최근 소재 고갈로 정체기에 부딪히게 된다. 방송 중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에 한껏 들떠 있지만 카메라가 꺼지면 텅 빈 얼굴로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다. 회사나 학교, 가정에서 각각 다른 얼굴인 현대인의 아픈 초상 같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부캐

요즘은 부캐 전성시대다.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퇴근 후 유튜버, 인플루언서, 작가 등으로 부캐를 갖기도 한다. 또 다른 나는 자존감을 높이고 삶의 애정을 더해준다. 영화 속에는 어딘가에 단단히 미친 사람들이 등장한다. 윤시내 모창가수, 연시내, 운시내, 윤신애, 가시내는 모두 이름이 2개 이상이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지만 본인 삶에 자부심을 갖고 조금씩 진짜에 다가가는 진정성으로 똘똘 뭉쳐있다. 가짜의 품격, 짝퉁에도 진실함이 있다. 현실에는 자신감이 부족하지만 가면을 쓰면 살아 있음이 전달된다.

어쩌면 엄마와 딸도 부캐에 진심이었던 거다. 관종 유튜버 하다는 끊임없이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하며 관심받기 위해 애쓴다. 반면 순이는 진짜 모습보다 낫다고 여겨 본캐를 부정하기 바쁘다. 하지만 연시내가 화장과 가발을 버리고 순이로 돌아오고, 짱하가 핸드폰을 끄고 장하다로 불리는 순간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길’은 짙은 화장과 가발, 화려한 의상에 감추고 있던 나 자신을 그대로 선보이는 무대였다. 이로써 모녀는 각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프로다운면을 인정한다. 가면을 벗고 민낯이 드러났을 때의 홀가분한 마음. 남들에게 관심받길 바라지만 정작 서로가 관심 밖이던 모녀는 길에서 폭발하고 돌아서다 이내 화해한다. 결국 동상이몽 모녀의 고군분투를 통해 화해하는 과정을 위트 있게 보여준다.

엄마와 딸, 연시내와 짱하의 사연만 있는 건 아니다. 10년 동안 아이돌 연습생으로 있다 포기한 ‘운시내’와 앨범까지 냈지만 정작 본캐 백두리로 버스킹 할 때는 낯가리는 ‘가시내’ 이야기도 흥미롭다.

데뷔할 수 없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지만 연습실 밖에서 기다리는 팬들 위해 포기할 수 없었던 아이돌 연습생, 청중과 미묘한 거리 두기를 해야만 노래할 수 있는 가시내의 수줍음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숱한 난관에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살아있는 한 모두가 주인공이자 진실한 인생인 것이다.

덧) 영화가 끝나고 노래를 찾아 듣기까지 했다. 오프닝과 클로징에 등장하는 진짜 윤시내의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내내 들리는 그의 노래가 흥겹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의 마음을 대변하는 가사가 제대로 마음을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