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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다주의 1인 4역, ‘동조자’가 숨겨둔 의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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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 포스터.
▲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 포스터.

※ 주의 : 영화 ‘동조자’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CIA 요원 클로드는 미국 방식을 가르쳐준 핵심 인물입니다. 교육과 대중 문화를 접하게 해줬고… 미국인답게 내 충성심을 ‘구매’할 수 있다고 믿었죠.”

지난 22일 2화를 공개한 박찬욱 감독의 ‘동조자’에서 주인공 나(호아 쉬안데)가 들려주는 대사다. 베트남 혼혈로 태어난 젊은 엘리트 정보장교인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베트남전에 뛰어든 미국 CIA에 적극적으로 협조 중이다. 더할 나위 없는 친미 인사처럼 느껴지는 약력이지만, ‘동조자’ 초반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는 관객은 그 입장이 영 미묘하다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동조자’는 거장으로 호명되는 박찬욱 감독이 퓰리처상을 받은 동명의 원작 소설을 드라마화 한 작품이다.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대범한 표현력과 특유의 미적 감각이 빛나는 가운데, 작품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실마리도 곳곳에 숨겨뒀다. 그 실마리 중 하나가 바로 주인공 입을 통해 묘사되는 CIA 요원 클로드일 것이다.

클로드의 존재가 흥미진진한 이유는 그 역할을 맡아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연관돼 있다. 그가 ‘동조자’ 안에서 무려 1인 4역을 소화했기 때문이다. CIA 요원 클로드뿐만 아니라 동양학을 전공한 미국 대학 교수, 워싱턴 정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하원의원,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영화감독 역까지 도맡았다.

▲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 스틸컷.
▲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 스틸컷.

1인 4역은 결코 흔한 설정은 아니다. 이런 기획을 밀어붙인 박찬욱 감독에게 분명한 목적이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단서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감독의 입을 통해 나왔다. ‘동조자’의 원작 소설에서 네 명의 백인 남성이 한자리에 모여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장면을 본 순간, 단박에 이들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직감했다고 했다. “이들은 미국 시스템, 미국 자본주의, 미국이라는 기관을 보여주는 4개의 얼굴일 뿐이고 결국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CIA 요원이 상징하는 정보력과 조직력, 대학 교수가 의미하는 지력, 미 하원의원이 대변하는 권력, 할리우드 영화감독이 가리키는 문화적 강성함은 결국 미국이라는 존재의 압도적인 ‘지배력’을 구성하는 요소다. 지배력은 필연적으로 타인을 향하고, 갈등과 분열을 촉발한다. 1970년대 베트남이 미국을 따르는 남베트남과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려는 북베트남으로 첨예하게 갈라선 맥락이기도 하다.

▲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 스틸컷.
▲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 스틸컷.

미국에 협조하는 것처럼 보이던 주인공 대위의 수심 깊은 표정에도 바로 이런 복잡한 맥락이 숨어있다. 완전한 친미 인사일 것 같던 그는 겉보기와는 달리, 어린 시절 북베트남이 미국 CIA에 침투시킨 첩자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따라 걷던 그가 미국 정보부 요원의 눈에 띄어 미국 유학을 하게 되고 이중간첩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원작 소설 ‘동조자’는 패전 이후 다시금 북베트남의 지시를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되는 주인공 삶의 모순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부조리를 심도 있게 다루며 명성을 얻었다.

아직 공개될 분량이 남은 드라마 ‘동조자’에서 주인공이 겪게 될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이내 피를 나눈 형제만큼 가까운 친구들은 물론이고, 사랑을 나눈 연인 앞에서마저 ‘온전한 나’일 수 없다는 비극 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양쪽 모두 이해할 수 있어서 어느 쪽에도 설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설명이 그 감각을 짐작하게 하는 가운데, 작품을 즐기던 관객에게도 어느덧 몇 가지 질문이 남게 된다. 이중간첩이 돼버린 주인공의 비극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나. 그는 왜 이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나. 그 상흔은 치유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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