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창문 밖, 환자의 눈에 보이는 건 삭막한 도시 풍경이 아니었다. 그곳엔 살아 숨 쉬듯 변화하는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숲,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83세 조경가는 생명력이 왕성한 나무를 심고, 울창하고 넓은 그늘을 만들고 싶었다. 환자와 보호자, 의료인들이 편히 쉴 수 있고 맘껏 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다.
정영선 조경가는 이런 마음을 담아 서울 아산병원 신관 조경을 했다. 정 조경사는 지난 1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남편이) 오랜 기간 병원에 계셨다”고 말했다.
오랜 투병생활을 했던 남편을 떠올렸다. 대부분 환자 침대 건너편 창문으로 장례식장과 화장터가 보였다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마치 ‘너 바로 여기 올 거지?’하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잎새’처럼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느낌이랄까.
정 조경사는 병원 신관 조경 자문 의뢰를 받았고 자문을 해서 될 일이 아니었기에 오랜 투병을 한 남편 생각에 직접 조경하기로 마음먹었다.
정 조경사는 왕성한 생명력의 식물로 정원을 가득 채웠다. 환자들이 자연의 변화와 꽃 피는 걸 보면서 ‘내년 봄에도 나는 살아서 나가야지’하는 느낌을 들게 하고 싶었다.
정 조경사는 환자, 보호자, 의료인이 나무 그늘에 숨어서 맘 편히 쉴 수 있고, 엉엉 울 수 있도록 울창한 나무 그늘을 만들었다. 정 조경사에게 정원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는 자기가 설계한 조경으로 사람들이 행복과 기쁨을 느낀다면, 자신도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선 조경가는 잠실 아시아공원의 조경을 설계했고, 예술의전당, 아모레퍼시픽, 디올 성수, 선유도 공원 등의 조경을 설계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그가 일하면서 가슴에 새긴 말이다. 뜻을 풀자면,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치사스럽지 않다”는 의미다. 정 조경가는 “한국의 도자기,음식, 주택, 조경 모든 것에 뼛속에 살아있는 말”이라며 “한국을 이야기할 때 그 자세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양아라 에디터 / ara.yang@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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