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유아인 리스크’는 컸다. 26일 공개된 넷플릭스 12부작 드라마 ‘종말의 바보’는 유아인의 등장이 몰입을 방해하고 드라마 내용도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드라마는 지난해 주연배우 유아인이 마약 투약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공개를 보류했다가 1년여 만에 세상에 나왔다. 지구 종말 200일 전 한국의 혼돈 상황을 그리면서 그럼에도 일상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진민 감독은 지난 19일 제작발표회에서 “주인공이 여러명이어서 유아인 분량을 최대한 편집해 내보내도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고 했지만 시청자 반응은 달랐다. 드라마 커뮤니티에는 유아인 등장 부분에서 마약 사건이 연상되어 몰입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유아인은 연인 세경(안은진) 곁을 지키는 생명공학연구소 연구원 윤상으로 나오는데, 끝을 흐리는 말투 등 ‘유아인표 연기’가 연기로 보이지 않고 마약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 프리랜서 드라마 피디는 “사생활에 영향을 받아 역할에 몰입되지 않는다는 반응은 배우로서는 치명적”이라고 했다.
드라마 자체도 ‘유아인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아인 출연 분량을 편집해서 작품이 엉성해진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다.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모두 겉핡기식으로 지나간다. 작품에 담긴 일상의 소중함에서 감동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신 아이들을 납치하는 인신매매에 맞서는 중학교 교사 세경의 사투를 주요하게 다루는데, ‘아이들이 희망’이라는 메시지에만 만족하기에는 ‘종말’이라는 배경이 아쉽고 수백억원에 이르는 제작비는 아깝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반적인 디스토피아와 다른 결을 시도한 것은 좋은데 인물 서사를 깊게 파고들지 않아 몰입이 어렵다. 이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유아인 편집본 ‘종말의 바보’를 보면서, 업계는 고민에 빠졌다. ‘종말의 바보’가 유아인 리스크를 감당하고 가면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제작자들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유아인 리스크를 안고도 ‘종말의 바보’가 성공하면, 비슷한 이유로 대기 중인 작품들도 부담을 덜 수 있었을 텐데 이 드라마로 혼란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최근 연예인들의 학교폭력 논란 등으로 수많은 작품이 빛을 못 보고 있다. 유아인이 출연한 영화 ‘승부사’와 ‘하이파이브’를 비롯해 ‘내 남편과 결혼해줘’로 상승세를 타던 송하윤이 학교폭력 가해 의혹을 받으면서 송하윤이 여자 주인공으로 나온 드라마 ‘찌질의 역사’도 공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이 드라마는 2022년 8월에 촬영을 완료했지만 남자 주인공 조병규가 학교폭력 가해 의혹을 받으면서 이미 한차례 공개가 보류된 바 있다. 2019년 촬영을 끝낸 영화 ‘출장수사’와 2020년 촬영을 마친 ‘소방관’도 주연 배성우와 곽도원의 음주운전 논란으로 오랫동안 관객을 못 만나고 있다.
공개 보류만이 답은 아니라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과거에는 비공개 외에 방법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채널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사냥개들’도 음주운전 논란을 빚은 김새론을 최대한 편집하고 공개했다. 주연이 물의를 빚으며 보류된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한 경험이 있는 한 배우는 “작품이 일단 공개가 돼야 경력도 증명되고 외국 활동 기회도 얻을 수 있어서 우리 같은 조연들에게 작품 공개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요즘은 드라마 촬영이 종료되고 공개 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언제까지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물의를 일으킨 배우에 대한 대중 정서가 부정적이라면 흥행이 어려울 수밖에 없기에 아예 공개를 하지 않기로 판단했다면 모를까, 공개를 결심했다면 작품 자체로 승부를 보는 게 맞다”고 했다.
한겨레 남지은 기자 /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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