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터뷰!) 영화 ‘딸에 대하여’의 오민애 배우를 만나다 -②
오민애 배우 인터뷰 1부
30년 무명 배우였지만 3년 만에 극복
-자기를 정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자기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과거를 돌이켜 보거나 나와 관련된 일기나 자서전, 유서도 좋다. 배우는 필연적으로 그 과정을 남들보다 겪을 기회가 많다. 인물의 감정을 글로 읽으면서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표현하지’ 고민해 보면 접근이 용이해진다. 감정을 연구하다가 자신을 좀 더 깊게 알게 되고 나아가 사람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이 좋은 거다. (웃음)”
-「윤시내가 사라졌다」 엄마, 「재방송」 이모, 「파일럿」의 엄마, 「한국이 싫어서」 엄마, [돌풍] 영부인 등등 가장 내 모습과 가까웠던 캐릭터를 생각해 본다면.
“엄마도 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을 표현했고 다른 인물도 마찬가지다. 이 안에 저도 모르는 제가 너무 많다. 몰랐던 자아를 발견했다. (웃음) 연극은 두 달 정도 훈련으로 인물과 상황을 맞춰가는데, 영화는 가진 것 중에서 즉발적으로 표현해 내야만 한다. 무명배우로 30년을 보내면서 알바, 육아, 시어머니 등 경험치가 쌓여서 큰 재산이 되었다. 그 속에서 꺼내야 진정성이 느껴지는 거다.’ 여러 가지 모습을 가져와야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 그래서 경험만큼 값진 선생님은 없다는 말이 맞다. 무명시절을 겪으며 견딘 경험이 스펙이 되었다”
-30년 경력자다. 처음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30년 전에 인도 배낭여행이 유행이었다. 여행사에 찾아갔는데 직원이 저보고 ‘연극배우’ 아니야고 하는 거다. 연극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무대에서 친구들이 하는 거나 봤지. 구경도 제대로 해본 적 없었을 때였다. 그런데 카리스마가 있어서 연기를 잘할 거 같다고 하더라. 그때 이야기가 흘러 흘러 소개해 주면 (배우를) 하겠냐고 물어보더라. 그땐 지금보다 더 호기심도 많고 겁도 없었을 때다. 원로 선배를 소개해 줬고 마침 공연 예정인 연극이 있어 다음 날 만났다. (웃음)
배우가 되려면 연기 제작 시스템부터 알아야 한다고 해서 조연출부터 시작했다. 조연출은 감독 부재 시 대행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라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다. 저보고 연극해 볼 생각이냐고 소개해 준 것도 신기한데, 상대가 전화를 받았고, 마침 비어 있는 자리가 있어 다음 날부터 연극의 길을 하게 된 거다. 하나라도 삐걱거렸다면 인도에 갔을 거다. 이후 작품에서 음악 감독했던 스태프의 소개로 배우 추천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분은 귀인이다”
-힘들어서 그만둘까 포기하려던 시기가 여러 번 왔을 거 같은데 일어설 수 있었던 용기는.
“2018년쯤 연기를 그만두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시어머니의 구직 제안도 있었는데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생각이 많았다.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뭘지 생각해 봤는데 영화를 찍는 거였다. 예전에 연기는 그저 알바라고만 생각했던 거다. 포기하기에는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께 3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 보고 그때도 자리 잡지 못한다면 김밥집에서 김밥 말아서라도 돈 벌어온다고 선언했다.
트라우마가 된 작품이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이었다. 1회차 출연이었는데 NG만 10번 넘게 냈다. 제가 리허설 때 좀 버걱거리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그걸 본 스크립터가 대사가 틀렸다며 지적하는데 무언가에 맞은 듯 멍했다.
‘왜 배우의 언어를 틀렸다고 할까’ 몰입하다 보면 자기 언어가 나오기 마련인데.. (리허설 때) 대사를 완벽히 외워서 한다는 건 자기 본심이 없는 순수하지 않은 감정이거나 그냥 외운 대사를 출력하는 거다. 저는 분명히 감정을 어떻게 표출할지 조율 중인 건데 대사가 틀렸다고 어깃장을 내버리니 순간 뇌가 정지되었다. (웃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서럽던지.. 신발은 낡아서 떨어졌지, 더운데 겨울 복장까지 하고 있지.. 자괴감, 모멸감이 밀려왔다. 또 고속버스는 왜 이리 낡은 건지. 펑펑 울었다. 다시는 카메라 앞에 못 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에이전시에서도 온갖 좋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그때 신기하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한 달 뒤 「나의 새라씨」(2019)가 제안 왔는데 딱 지금 내 이야기였다. 자기 사업에 실패했지, 남편 관계도 나쁘고, 안 좋은 현실에 몰린 여성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립하고 독립하는 이야기다.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힘들었지만 성장 이야기라 꼭 도전해 보고 싶었다. 지금 오민애를 만들어 준 시발점, 도화선이 된 작품이다. 그 영화로 미장센단편영화제(2019)에서 심사위원특별상 연기부문 상을 받게 되었다”
-「파일럿」의 김한결 감독이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말을 했다. 역할의 한계를 두지 않는 배우란 생각인데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나.
“영화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서 즐기는 여행이라고 여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크다. 한 사람을 만나면 그 자체로 역사 덩어리(세계관)기 때문에 보석 같다.
욕심이 많아서 다 해보고 싶은데 일단 맡은 역할을 잘하는 게 중요하겠다. 앞으로 저에게 오는 어떤 캐릭터도 거부하지 않을 거고 최선을 다해 창조할 거다. 최근 파킨슨 증후군 캐릭터 제안이 들어와 준비 중이다. 9월부터 시작할 것 같다. 사실 액션도 해보고 싶어서 주짓수 배우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그만두었다. (나이 들다 보니) 회복력이 떨어지더라. 그래도 운동은 꾸준히 해야 한다. 건강이 실력, 체력이 실력이다”
-앞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 듣고 싶은 수식어나 대중의 반응도 좋다.
“가장 좋은 칭찬은 저 인지 몰라줄 때다. 아직은 낯익은 얼굴이 아니어서 잘 몰라주시지만 대중적인 배우가 되면 훗날 ‘여기에도 나왔었어?’, ‘왜 그때는 몰랐지?’라는 말을 해주시겠지. 그런 말을 듣는 배우가 되고 싶다”
딸에 대하여 감독 출연 이학민,이희정,김혜진 평점 3.72
글: 장혜령
사진: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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