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남부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EX90은 움직이는 오아시스 같았다
영화 「파리, 텍사스」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황량한 풍경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다. 한참을 달려도 낮고 듬성듬성한 그루터기 산과 사막 같은 들판이 펼쳐진다. 나는 지금 때로 매끄럽고 때로 거친 LA 남부 도로를 볼보의 최신 전기차 EX90을 타고 달리는 중이다. 화씨로 표시되는 계기판은 100℉(37.7℃)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내가 이곳 캘리포니아 남부의 작렬하는 태양 아래 서 있는 까닭은 볼보 EX90 글로벌 테스트 드라이빙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EX90은 기존 XC90을 대체하는 모델일까? 우선 7인승 SUV라는 포지션이 겹치지만 그건 아니다. 그렇다고 XC90의 전기차 버전으로 보기도 어렵다. 말하자면 기존과는 다른 방식과 생각으로 만든 차이다.
볼보 EX90은 SPA2라는 새로운 전기차 전용 맞춤형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시승차인 트윈 모터 퍼포먼스는 111kWh 용량의 400V 리튬 이온 배터리를 장착하고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 거리 614km(WLPT 기준)를 달린다. 최고출력 380kW(517마력), 최대토크 92.8kg·m의 성능으로 0→시속 100km 가속을 4.9초만에 해낸다. 그리고 250kW급 DC 충전을 통해 30분 만에 10-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이처럼 고성능이며 최신 전기차 기술을 대거 탑재했지만, 볼보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이 플랫폼의 컴퓨팅 성능이다. 이처럼 EX90은 볼보의 새로운 방향성을 구현하는 모델이다.
태양이 하늘 한 복판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현재 온도는 41℃를 가리킨다. 오늘의 날씨는 최고기온 43℃를 표시하고 있다. 누군가 조금 일찍 찾아온 인디언 썸머라고 말했지만 전 세계적인 이상 기온 현상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런 이상 기온이 오늘 만나는 전기차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EX90은 부드럽게 달리며 승차감이 좋다. 실제 치수보다 작아 보이는 스타일링만큼이나 운전석에서도 대형 차체를 운전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차체 크기는 길이 5037mm, 너비 2039mm, 높이 1747mm로 BMW iX보다 크고 기아 EV9보다 길이와 너비가 더 크다. 덩치에 비해 전반적으로 다루기 쉽다. 코너가 이어지는 와인딩 로드에서 비교적 민첩하고 정확한 핸들링을 보여준다. 실내는 아주 크다는 느낌보다 여유로운 분위기. 친환경 소재 시트는 가죽 시트의 안락함보다 쾌적함으로 대신한다. 어쩌면 의무감으로, 익숙해져야 한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전기차는 이제 내연기관의 주행 질감과 큰 차이는 없다. 그렇다고 감성적인 부분에서 이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와인딩 로드를 오르내릴 때 급격한 변속과 긴장감 그리고 심장을 뛰게 하는 배기음, 거친 숨을 몰아쉬다 내지르는 자유의 함성 따위는 이제 찾기 어렵다. 그저 잘 조율된 소프트웨어로 무장한 기계가 세팅된 값을 상황에 맞게 발현할 뿐이다.
EX90은 그 지점에서 한발 더 앞으로 나간다. 2챔버 에어 서스펜션은 볼보에서 처음 적용하는 장치다. 크고 작은 요철을 잘 타고 넘으며 거친 도로에서 충격을 줄여준다. 다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소프트 설정에서 좀 더 부드럽게 달린다. 드라이브 모드는 표준에서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지만 서스펜션을 단단하게 설정하고 퍼포먼스 모드로 집중하면 상당한 폭발력을 맛볼 수 있다. 원 페달 드라이브는 별다른 위화감 없이 작동했다. 와인딩 로드에서 편리하고 효율적인 코너링에 도움 된다. 운전자에겐 괜찮은 기능이지만 동승자에겐 멀미가 올 수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섭씨 40도가 넘는 날씨를 경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부가 탈것 같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잠시 뜨거운 태양 아래 있다가 쾌적한 EX90 안으로 들어오면, 황량한 세계의 안식처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시승차의 보디 컬러가 샌드 듄인데, SF 영화 「듄」에서 사막을 헤매 달리다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 같은 것. 달리는 오아시스라면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이 뜨거운 날씨에서는 과장이 아니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의 미래가 걱정되는 이유다. 헤드 레스트에 통합된 스피커와 돌비 애트모스를 탑재한 바워스 앤 윌킨스 오디오 시스템의 한층 풍성해진 사운드가 더위에 지친 몸을 감싸 안는다. 관계자는 사운드 샤워라는 표현을 썼는데 정말 사운드에 흠뻑 젖는 듯한 기분이다.
볼보 EX90은 볼보의 새로운 미래를 공언하는 모델이다. 새 시대의 맏형이 그렇듯이 그 작업이 순탄치는 않다. 우선 데뷔 이후 시판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 이유는 이미 알려져 있듯 소프트웨어의 결함 때문이다. 개별적인 소프트웨어는 따로 잘 작동하지만 한데 모았을 때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욕심이 많았지만 그 욕심은 궁극적으로 치명적인 사고 제로(Zero)의 비전을 위한 것. 이를 위해 라이다(LiDAR)를 기본 포함한 외부 센서 세트 및 운전자 이해 시스템과 같은 지능형 안전 기술을 도입했다는 설명이다.
거친 산악도로를 벗어나 해안도로로 접어들자 뜨거운 햇살도 윤기가 묻어나는 듯 보였다.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변에는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막 위의 도시, 그리고 누군가의 꿈으로 존재하는 도시, 캘리포니아에 온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낮은 지붕이 이어진 언덕 위의 집들과 상점이 늘어선 거리에는 조용한 활기가 피어올랐다. 볼보 EX90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간다.
첨단 센서 세트(Sensor Set)란?
첨단 센서 세트는 8개의 카메라와 5개의 레이더(Radar), 16개의 초음파 센서 및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 센서로 구성된다. 라이다는 코어 컴퓨팅(Core computing)과 볼보가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구동되는 원격 감지 기술로 펄스 레이저 형태의 빛을 사용해 높은 정밀도로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 EX90의 루프라인에 내장되어 있으며, 최대 250m 반경의 보행자와 120m 전방 검은색 도로에 있는 타이어와 같이 작고 어두운 물체를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카메라처럼 빛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고속 주행은 물론 야간에도 차량 내외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가능성을 이전보다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볼보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라이더를 통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의 위험을 최대 20%까지 줄일 수 있고, 충돌 방지 효과는 최대 9%까지 개선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볼보의 안전 자동화 부문 책임자, 요아킴 드 베르디에(Joachim de Verdier)는 “우리는 외부 환경과 운전자의 주의력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융합하고 있다. 이는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모든 안전 시스템과 센서, 소프트웨어 및 컴퓨팅 제어 성능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라며, “그러나 평소에는 전혀 인식할 수 없으며, 필요할 순간에만 그 존재를 드러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 볼보의 새로운 안전 기술, 어디까지 왔나?
EX90은 기술 부문에서 특히 라이다를 강조하고 있다. 외관상 루프 라인에 돌출되어 있는데 최적의 위치인가?
볼보는 충돌사고 없는 도로를 지향하며 모두를 위해 안전한 차를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포부에 따라 EX90에 라이다와 AI 기반 슈퍼컴퓨터를 기본 탑재하고 있다. 강력한 실내외 센서 세트를 보완하는 라이다는 입체적인 감지 맵을 만든다. 철저한 분석 끝에, 루미나에서 제조한 아이리스(Iris) 라이다를 선택하게 되었다. 아이리스는 1550nm 파장에서 작동하는 라이다로, 감지 거리가 길고 뛰어난 감지 성능과 정밀도를 갖추고 있다. 루프 라인 중앙 높은 곳에 위치한 라이다는 카메라, 레이더와 같은 다른 센서와 결합하여 완벽한 센서 세트를 구성한다. 차량의 맨 위에 배치했기 때문에, 안전과 자율 주행을 위한 최상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EX90의 루프에 내장된 라이다는 8개 카메라와 5개 레이더, 16개의 초음파 센서와 연동하여 주변 환경의 실시간 정보를 고정밀 360도 이미지로 제공한다. 이 외부 센서 세트는 인간이 볼 수 없는 범위까지도 시야를 확보해 충돌과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90에는 코어 컴퓨팅을 도입한 자율주행 하드웨어 가 탑재된다. 어떤 특징이 있나?
EX90은 코어 컴퓨팅 기술이 탑재된 최초의 차량 중 하나이며, 볼보와 업계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하는 모델이다. 두 개의 중앙 집중식 코어 컴퓨터가 탑재되어 있는데, 모두 엔비디아 시스템 온 칩으로 구동된다. 이것은 일종의 뇌와 같이 인터페이스 우선 방식의 진정한 소프트웨어 정의 컴퓨터로서 자동차의 기능을 활용한다. 첫 번째 코어 컴퓨터는 기본 소프트웨어, 에너지 관리, 운전자 보조 기능과 같은 핵심 기능을 관리한다. 두 번째 컴퓨터는 라이다 인식과 같은 딥러닝 집약적인 작업 전용이다. 플랫폼에 중복성을 제공하고, 자율주행 준비를 갖추게 해주기도 한다. 코어 컴퓨팅 아키텍처는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포함해 효율성과 속도를 강화하고, 고객이 차를 이용할 때마다 매일 더 좋은 점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최근 자동차 실내에 물리 버튼을 없애고 터치스크린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 이것이 과연 더 안전한 지는 의문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시도했던 것들이 꼭 미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래 전 휴대폰 업계의 선도 기업들은 터치스크린 사용을 무시했다. 그러다 다른 회사들이 스크린만 있는 기기를 통해 고객들에게 어떻게 더 많은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지를 알아냈을 때, 이 업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영상 통화는 실패할 것이라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디자인 결정을 할 때 우리는 기술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는다. 우리 고객들이 다뤄야 할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사용 사례들에 있어 우리는 물리적인 표면과 디지털 표면 간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계속 진화시키고 우리의 사용자 경험을 개선시켜 나갈 것이다.
운전자 이해 시스템은 획기적이지만 다른 브랜드에서도 이미 적용한 기술이다. EX90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볼보는 자동차 제조사로는 유일하게 두 대의 카메라로 구성된 운전자 이해 시스템을 기본 사양으로 제공하고 있다. 카메라 하나는 운전자 정보 모듈(DIM) 아래에, 다른 하나는 스피커 하우징에 내장되어 있다. 기본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어떤 알고리즘은 차량이 전방에 위협이 있다고 판단할 때 운전자의 주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평가하여 최상의 경고 또는 개입 시점을 알리도록 설계되었다. 또 어떤 알고리즘은 운전자가 운전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운전자가 도로를 주시하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을 비교하거나 졸음을 나타낼 수 있는 눈 깜박임의 길어짐이나 느려짐을 살펴보는 등 시선 패턴에 주목한다.
전기차와 관련해 배터리 화재 등 안전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볼보의 대응책은 무엇인가?
EX90은 첨단 구조 설계를 통해 충돌 시 운전자와 탑승자를 보호하도록 설계되었다. 우선 안전 케이지가 탁월한 충돌 보호 기능을 제공한다. 차량 앞부분은 11%의 경량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프레임의 무게를 줄이고 에너지를 더 잘 흡수한다. 측면과 후면 프레임은 21%의 보론강(boron steel)을 사용해 배터리 팩 구조의 강도를 높였다. XC90에 비해 비틀림 강성은 50%, 충돌 시 에너지 흡수력은 20% 향상되었다. 보론강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질량이나 무게 증가 없이 초고강도인 핫포밍 보론강을 높은 비율로 사용했다. 변형은 외부 구역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충격 에너지가 탑승자 공간에 가까이 침투할수록 소재의 변형이 적다. 탑승자를 보호하기 위해 탑승자 공간을 최대한 온전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목표다.
글 최주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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