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 때 "모든 걸 걸고 한국을 지켜줬지만" 미국 때문에 감춰진 나라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카그뉴, 에티오피아의 선택 아프리카에서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 국가는 에티오피아 한 나라뿐이었다.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는 유엔군 파병 요청에 “제2차 세계대전 때 에티오피아를 도와준 국제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며 정예 부대를 보내기로 결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는 황실 근위대 출신으로 구성된 ‘카그뉴(Kagnew)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참석 후기, 함께 지킨 자유와 평화 미래로 잇다2025년 7월 27일, 유난히도 푸르렀던 하늘 아래, 저는 국가보훈부 2030 자문단의 일원으로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이 열린 고양 킨텍스를 찾았어요. 이 날은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 날이었답니다. 바로 73년 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국경과 이념, 피부색을 넘어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먼 타국 땅, 이 작은 한반
253번 넘는 전투에도 ''단 한 번도 패배 없이'' 한국을 지켜준 아프리카 부대에티오피아가 한국을 도운 이유와 배경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한국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었지만, 유엔의 집단 안보 원칙에 따라 참전했습니다.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누구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며 국제협력을 강조했고, 이를 바탕으로 에티오피아는 UN군에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이 결정에는 과거 이탈리아 식민지 경험, 에리트레아 회복 의지, 그
북한이 ''미군과 UN을 건드려'' 북한이 하루 만에 사라질 뻔했던 사건작은 작업에서 시작된 일촉즉발의 긴장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의 사천교 부근. 유엔군 소속 미군 장교 2명과 한국군 병력이 현장에 출동해 시야 확보를 위해 한 미루나무를 가지치기하는 작업을 진행하던 중 북한군이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이들은 정비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고, 그 요구가 거절되자 예상치 못한 물리적 충돌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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