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보통 나이에 비해 젊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에게 쓰곤 한다. 실제로 건강 분야에서는 나이를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눠서 본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태어난 해로부터 측정하는 ‘연대기적 나이(Chronological Age)’이며, 다른 하나는 신체 장기와 조직의 건강 상태를 평가하는 ‘생물학적 나이(Biological Age)’다.
생물학적 나이는 실질적인 건강 상태를 측정할 때 유용하다. 다만, 정확한 측정 기준이 일원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측정 주체마다 결과에 다소 차이가 난다는 단점이 있다. 미국의 한 연구진이 기존의 측정법에 비해 높은 정확도를 가진 평가 도구를 선보였다.
‘건강 엔트로피’에 기반한 건강 평가
미국 워싱턴 대학 의과대학 연구팀은 지난 5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새로운 건강 평가 도구와 그 방법론을 설명하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평가 도구는 ‘헬스 옥토 툴(Health Octo Tool)’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연구팀은 기존의 건강 평가 방법이 ‘특정 개별 질환의 위험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질병과 질병 사이의 상호작용도 고려해야 하며, 비록 사소한 질병이라도 전반적인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관점을 기반으로 특정 질환이 아닌 신체 기관 또는 전신의 노화를 표적으로 삼고자 했다.
연구팀이 사용한 접근법은 ‘건강 엔트로피(Health Entropy)’라는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엔트로피(Entropy)’는 보통 ‘무질서도’ 또는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물리학 개념이다. 이를 생물 현상에 적용해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화 또는 손상된 세포, 본래 기능을 상실한 분자가 많아지게 되고, 이에 따라 전체적인 신체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장기마다 ‘생물학적 나이’ 달라
연구팀은 1958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볼티모어 종단 노화 연구(BLSA)’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의 질병 이력과 건강 검진 결과, 변화 추이 등을 토대로, 자신들이 개발한 ‘헬스 옥토 툴’의 타당성을 검증하고자 한 것이다.
연구팀은 먼저 ‘신체 장기 질환 점수(Body Organ Disease Number)’를 확립했다. 심혈관계, 호흡기계, 중추신경계 등 질병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체내 시스템을 분류하고, 개인별 암 발병 이력, 뇌졸중 경험 여부 등을 토대로 1~14점까지의 점수를 매겼다.
연구팀은 각각의 장기 및 체내 시스템은 각기 다른 속도로 노화가 진행된다는 점에 착안해, 각 장기와 시스템의 실제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했다. 또한, 이 개념을 몸 전체로 확장해, ‘신체 시계(Body Clock)’라는 총체적인 측정값을 정의하고, 그 시계가 돌아가는 속도를 나타내기 위해 ‘신체 나이(Body Age)’라는 복합 측정값을 정의했다.
보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각 장기별 현재 상태’와 ‘노화 속도’를 따로 측정한 다음, 이들을 종합해 전체적인 생물학적 나이를 산출하는 접근법이다.
‘시계’(상태)와 ‘나이’(속도)로 구분
여기에 한 가지 더 고려할 부분이 있다. 주민등록상 나이가 같다고 해서 신체 노화 정도가 동일하지는 않다는 점은 당연한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나이가 같은 모든 사람들의 신체적 기능 저하가 동일한 수준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연구팀은 이 부분을 고려해 추가 지표를 개발했다. 나이가 들면 일반적으로 걷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점에 착안해, 생물학적 나이가 보행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속도 기반 신체 시계/나이(Speed-Body Clock/Age)’를 개발했다. 또한, 생물학적 노화가 신체 장애나 인지 장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는 ‘장애 기반 신체 시계/나이(Disability-Body Clock/Age)’도 만들었다.
연구팀은 이렇게 총 8개의 지표를 확립했다. ▲신체 시계 ▲신체 나이 ▲각 장기별 시계 ▲각 장기별 나이 ▲속도 기반 신체 시계 ▲속도 기반 신체 나이 ▲장애 기반 신체 시계 ▲장애 기반 신체 나이다. ‘시계’는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 ‘나이’는 변화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이해하면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연구팀은 이들 8가지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간단한 건강 검진으로 수집한 정보만 가지고도 개인의 노화 과정과 향후 위험 요인을 높은 정확도로 파악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를 바탕으로 노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파악하고, 건강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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