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멍해진다’라는 것은 뇌가 ‘자동 모드’로 들어갔다는 것과 같다. 뇌는 24시간 몸을 통제하지만, 인간은 의식적으로 모든 순간을 인식하고 통제하지 못한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깨어있는 동안에도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즉, 멍해지는 것은 본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뇌는 지루함이나 스트레스를 싫어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뇌는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자동 모드로 전환하곤 한다. 이는 이른바 ‘머리를 쓸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종종 발생할 수 있다. 늘 격무에 시달리는 뇌가 정신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선택하는 자연적 반응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우리가 때때로 멍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스러움 이상으로 자주 멍해진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가? ‘멍해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뇌는 ‘새로운 것’에 반응한다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 보자.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하루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을 테니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아마 하루의 모든 순간을 속속들이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앞뒤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뇌는 ‘특별함’을 중심으로 기억을 형성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것, 자주 겪지 않는 것을 더 잘 기억하는 것이다. 반복적인 것,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부터는 자극을 얻지 못한다. 뇌는 이런 상황을 에너지 절약의 기회로 본다. 예를 들어,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상황이 길어지면, 어느 순간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게 되면서 멍해지는 식이다.
새로운 정보가 쏟아져 들어올 때, 뇌는 과도한 부담을 느낀다. 흔히 ‘정보 과부하’라 불리는 현상이다. 쏟아지는 정보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뇌는 이를 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그 부담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더 이상의 정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방어 메커니즘으로 들어간다.
이때 뇌는 멍해진 상태를 유지하며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애쓴다. 마치 REM 수면 상태에서 학습한 내용과 기억을 처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짧은 시간 내에 새로운 정보를 많이 알게 됐을 때 머리가 혼란스러운 경험을 했다면, 짧게나마 ‘멍해진 상태’에 들어갔던 것일 수 있다.
뇌가 ‘새로운 정보’에 반응한다는 것은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종종 멍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 그 한 예다. 이는 조금 전 언급한 정보 과부하와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정보’의 과부하에 더해, 뇌가 회피하고 싶어하는 부정적 감정이 더해진다. 즉, 뇌의 방어 메커니즘이 더욱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높은 스트레스와 함께 어지러움을 느끼거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자포자기 상태로 나타난다. 순간적인 스트레스가 심각한 경우 의식을 잃는 것도 같은 원리라 할 수 있다.
삶과 직결된 압박감, 스트레스
위와 같은 상황에서의 멍해짐은 대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돌아봤을 때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바로 어제 먹은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기준에서 특별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보다 더 잦은 멍해짐이 발생하는 경우다. 실제로 현실에서는 생각보다 다양한 이유로 멍해짐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대개 부정적인 상황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우려할 필요가 있다.
학생으로 예를 들면, 기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를 알고 있음을 전제에 깔고 새로운 정보가 주어지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는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 수업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자신이 모르는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하는 시점에서, 이후의 설명은 학생에게 ‘불필요한’ 정보, 혹은 ‘자신과 관련이 없는’ 정보가 된다. 이는 지루함과 스트레스로 이어져, 뇌로 하여금 회피 반응을 유발하도록 만든다.
직장인 등 사회생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흔하게 발생한다. 자신의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떨어지는 회의에 참석한 경우, 휴식 시간에 관심이 없는 주제에 대해 계속 정보를 쏟아내는 동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며 화를 내는 상사, 억지 논리를 펼치며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소비자 등등 지루함이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은 부지기수다.
이런 식의 정보 과부하,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삶의 압박감은 수시로 멍해짐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잦은 멍해짐, 정신건강 문제 될 수 있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멍해진’ 상태에서 보낸 시간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일반적인 수준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제 출근길에 눈길을 잡아끄는 이성의 뒷모습을 보았던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인생이 불행해질 이유는 딱히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제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일일이 기억난다면, 과부하로 인해 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다만, 이런 멍해진 상태가 너무 자주 있다면, 어느 순간 ‘내 일상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다’라는 생각에 빠져들 수 있다. 이는 자칫 허무한 감정을 불러 일으켜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업무, 인간관계 등에 관련된 정보 과부하, 소비자 응대와 같은 사회적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순간의 멍해짐은 부정적 감정이 극대화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 기전이지만, 지나고 보면 자신의 시간을 ‘빼앗겼다’라는 식의 좋지 않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때로는 음주 후의 ‘필름 끊김’처럼 기억 상실이나 공백을 유발해 두려움을 일으킬 수도 한다.
이는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아들이는 성향의 사람일수록 나타나기 쉽다. 혹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건강 문제의 전단계나 초기 증상에 있는 경우 빠르게 심화될 수 있는 문제다. 감정 관리 능력 저하, 자기 통제력 상실로 인한 자신감이나 자존감 하락은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는 흔한 패턴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특별함’으로 덮어라
하루 중 멍해졌던 기억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면,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한 방법들을 시도해볼 수 있다. 이는 정신건강 문제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가져가기 위한 방법이 된다. 핵심은 간단하다. 마음챙김 명상과 같이 ‘현재의 순간’에 자신을 고정할 수 있도록, 뇌가 인식할 수 있는 ‘특별한 기억’을 만드는 것이다. 단,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향기의 에센셜 오일을 가까이 두고, 멍해지는 기분이 들 때 맡는 방법이 있다. 혹은 의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손을 씻고 오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체중에 좋지 않은 영향이 올 수 있지만, 강렬한 맛이 나는 간식을 섭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크 초콜릿 정도라면 좋은 타협안이 될 수 있다.
이런 방법들은 스스로 멍해지는 순간을 인지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그 정도의 노력은 스스로 넘어야 할 관문과 같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멍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준이라면 그냥 놔둬도 무방하다. 우리의 주된 타깃은, ‘뇌가 피하고 싶어 하는 부정적 감정의 순간’이다. 그 순간을 긍정적인 자극으로 덮는 연습을 통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올 것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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