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한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어린이에게 18개월에 걸쳐 땅콩버터를 조금씩 먹으면서 섭취량을 늘릴 수 있었다는 결과가 제기됐다. 알레르기 치료의 새로운 접근법이 될 수 있을지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땅콩 알레르기 치료법 연구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NIAID)에서는 ‘저역치 땅콩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저역치’란 ‘역치가 낮다’라는 뜻으로, 매우 소량의 땅콩 성분만 섭취해도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땅콩 알레르기는 여러 종류의 알레르기 중에서도 까다로운 종류로 꼽힌다. 다양한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서 땅콩 성분이 사용되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특정 음식만을 피하면 되는 알레르기에 비하면 외식 등의 생활에 여러 모로 불편을 겪기 쉽다. 이번 연구는 땅콩 알레르기로 인해 일상적 불편을 겪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NIAID 연구팀이 추진한 임상시험은 ‘식품 알레르기 치료법’의 한 과정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반쪽의 땅콩조차도 먹을 수 없을 정도의 땅콩 알레르기를 가진 어린이들을 모집해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4세~14세 범위의 어린이 및 청소년 73명을 모집해 그룹을 나눴다. 각 참가자들은 새로운 치료 전략을 시도하기 위한 그룹(땅콩 섭취 그룹), 그리고 기존과 마찬가지로 땅콩을 섭취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룹(회피 그룹)으로 무작위 배정됐다.
땅콩에 일부러 노출시키는 방법
땅콩 섭취 그룹의 어린이들은 땅콩버터 ⅛ 티스푼이라는 최소 복용량으로 시작했다. 약 8주 단위로 복용량을 늘리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며, 땅콩버터 뿐만 아니라 땅콩가루, 땅콩을 사용해 만든 사탕 등 다양한 형태의 땅콩 제품을 활용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의학적 감독이 선행됐으며, 현장에는 늘 알레르기 반응을 치료하기 위한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땅콩 섭취 그룹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조금씩 땅콩 섭취량을 늘렸다. 연구 기간 동안 치료가 필요한 급성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어린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땅콩 섭취 그룹과 회피 그룹 모두를 대상으로 ‘알레르기 반응 없이 땅콩버터를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땅콩 섭취 그룹에 속한 32명은 100% 전원 땅콩버터 3큰술을 먹을 수 있었다. 땅콩 단백질 9g에 해당하는 양이다.
반면, 회피 그룹에 속한 30명의 어린이 중에는 단 3명만이 땅콩버터 3큰술을 먹을 수 있었다. 이들은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비해 더 많은 양의 땅콩버터를 먹고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8개월 동안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내성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간실험은 알레르겐(알레르기 원인 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내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회피 그룹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지속적인 노출 없이도 자연스럽게 내성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원이 어느 정도 내성을 갖게 됐다는 것은, 세밀하게 계획된 노출 전략이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노출 치료 중단해도 내성 유지
이후로 땅콩 섭취 그룹에는 새로운 지침이 내려졌다. 16주 동안 매주 땅콩버터를 최소 2큰술을 섭취하도록 하고, 이후 8주 동안은 땅콩버터를 비롯한 땅콩 함유 식품을 철저하게 피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최종 테스트를 위해 다시 연구실로 모이도록 했다.
최초 32명의 인원 중 최종 테스트에 참여한 인원은 30명이었다. 이들 중 약 87%에 해당하는 26명은 8주 간의 의도적 회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땅콩 단백질 9g을 계속 견뎌냈다. 이는 알레르겐 노출 기반의 치료를 진행하다가 도중에 중단하더라도 그 효과가 유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매우 예민한 수준의 땅콩 알레르기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이번 실험을 토대로 땅콩 제품에 대한 ‘장기적인 내성’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다.
또한, 연구팀은 땅콩 이외의 식품 알레르겐에도 같은 치료 전략을 적용할 수 있을지 알아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땅콩 외에도 일상에서 회피가 어려운 밀이나 계란 등에 대한 알레르기에도 테스트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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