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산모의 식단이 단순히 태아의 체중이나 출산 결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성장한 이후 간 건강과 대사 질환 위험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김영주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Molecular Nutrition & Food Research에 게재한 연구를 통해, 임신 중 영양 불균형이 자녀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이로 인해 대사성 지방간 질환(MASLD)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음을 밝혔다.
연구는 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임신 중 모체에게 정상 식단, 50% 열량 제한 식단, 그리고 45% 고지방 식단을 각각 제공한 뒤 출생한 자손을 16주간 관찰한 결과, 수컷 자손에서 혈중 중성지방과 렙틴 수치가 유의하게 증가했으며, 이는 간의 지질 축적 및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수컷 자손의 장내에서는 부티레이트를 생성하는 락크노스시라피에(Lachnospiraceae) 계열의 유익균이 감소했으며, 혈중 부티레이트 농도도 함께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암컷 자손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상대적으로 덜 뚜렷하게 나타났다.
부티레이트는 장내에서 생성되는 단쇄지방산으로, 에너지 대사 및 지질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연구팀은 “임신 중 영양 불균형이 이처럼 자녀의 장내 유익균 생태계를 손상시켜 부티레이트 생성이 줄고, 이로 인해 대사 질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출생 이후 자손들이 정상적인 식단을 섭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대사 이상이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임신 중 식습관의 영향이 단기적이지 않고 장기적으로 자녀의 건강을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연구는 ‘발달 기원 건강 질병 이론(Developmental Origins of Health and Disease, DOHaD)’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연구팀은 “영양 과잉은 물론, 영양 부족 또한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으며, 특히 후자가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연구팀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를 진행해 이번 동물실험의 결과를 임상적으로 검증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임신부 영양 상담 및 건강관리 지침의 근거를 더욱 강화하고, 생애 초기 건강 형성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과 보건복지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