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여러 암 질환 중에서도 간암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다. 2023년 기준 통계청과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간암 사망자 수가 OECD 국가 중 1위였다. 더욱이 중장년층 남성에게선 가장 치명적인 암으로 꼽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치명적인 간암의 상당수는 예방 가능한 질병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핵심은 바로 간염이다. 특히 B형·C형 간염을 제때 관리하거나 차단한다면, 현재의 간암 사망률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은 ‘B형 간염 풍토병 국가’다
한국의 간암 사망률이 유독 높은 이유 중 하나는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율이 다른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전체 인구 중 약 3%가 만성 B형 간염 보유자이며, 이는 미국이나 유럽 주요 국가에 비해 5배 이상 높은 수치다.
문제는 B형 간염이 특별한 증상 없이 수십 년간 간을 서서히 손상시키다가, 간경변과 간암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B형 간염 보유자 중 약 15~20%는 아무런 치료 없이 간암으로 직행하는 경로를 밟는다. 이처럼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진행 과정이 간암의 높은 사망률로 이어진다.
C형 간염도 무증상이지만 간암 위험은 똑같다
B형 간염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C형 간염도 간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 바이러스 역시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없고, 감염 여부를 자각하기 어려워 조기 진단율이 낮다. 그러나 만성 C형 간염 환자의 약 20%는 10~20년 내 간경변증으로 진행되며, 이 중 상당수가 간암으로 전이된다.
특히 C형 간염은 아직까지 백신이 없어, 감염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닌 초기 발견과 항바이러스 치료가 유일한 예방 전략이다. 다행히 현재는 경구 항바이러스제 치료로 완치율이 90% 이상이지만, 문제는 많은 환자가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간염 예방과 관리’만 해도 간암 발생률은 절반 가까이 낮아진다
의료계에서는 이미 간염과 간암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연구가 누적되어 있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의 2021년 분석에 따르면, 간암 환자의 72%가 B형 또는 C형 간염을 앓은 병력이 있었고, 그중 절반 이상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았다.
반면 간염 예방 백신 접종자, 정기적인 바이러스 검사를 받은 집단은 간암 발생률이 최대 47% 낮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시 말해, 간암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 전 단계인 간염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치명률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간염이 ‘국가적 질환’임에도 방치되는 구조
간염은 흔한 질병이지만, 동시에 가장 조용하게 방치되는 질병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출생 직후 B형 간염 예방접종이 의무화돼 있지만, 성인 이후 재감염 가능성이나 만성 보유 여부에 대한 정기적 검진 시스템은 매우 미흡하다. 건강검진 항목에 간염 항체 유무가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C형 간염은 아예 선별검사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간염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약제 복용 중단, 자가진단 실패 등이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무증상이라는 특성이 질병 자체의 위험을 은폐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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