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연기 노출이 아니라 ‘질병의 씨앗’이 된다
간접흡연은 흡연자가 직접 마신 연기보다 더 해로운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말,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간접흡연으로 인한 손상이 노출된 사람에게만 그치지 않고 자녀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당장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장기적인 질병 발생 확률이 유전처럼 작동할 수 있는 문제다.
특히 최근 연구에서는 부모의 흡연 습관이 자녀의 폐 건강에 영향을 주는 수준을 넘어,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이라는 구체적인 질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즉, 간접흡연은 다음 세대의 호흡기 건강을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독’이라 볼 수 있다.
COPD, 단순한 폐질환이 아니라 ‘점점 무너지는 폐’다
COPD는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의 약자로, 만성폐쇄성폐질환이라고 불린다. 이름 그대로 폐로 공기가 드나드는 통로가 점점 좁아지고 막혀서 호흡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병이다. 천식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COPD는 점진적이고 비가역적인 변화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주된 원인은 장기간의 흡연이나 유해물질 노출인데, 부모의 흡연이 자녀에게 미치는 간접적인 영향이 이 병의 발생 기전을 자극할 수 있다. 특히 폐포가 탄력을 잃고, 기도가 좁아지며, 기침과 가래, 숨참 등의 증상이 점점 심해진다. 치료보다는 ‘조기 차단’이 훨씬 중요한 질병이다.
간접흡연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폐가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이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은 그대로지만, 환경적 요인에 따라 유전자 발현 방식이 바뀌는 현상을 의미한다. 흡연자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런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받게 된다.
간접흡연에 포함된 니코틴, 벤젠, 폴리사이클릭 방향족 탄화수소 같은 유해물질이 태아의 폐 성장 유전자에 영향을 주거나, 출생 후 면역 시스템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연구들이 많다. 결국 이런 변화들이 자라면서 ‘COPD 체질’을 형성하게 만들 수 있고, 어릴 때부터 폐 기능이 떨어진 상태로 시작하게 된다.
성장기 폐 발달에 결정적인 손상을 준다
사람의 폐는 청소년기까지도 계속 성장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간접흡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폐포 수 증가와 기도 확장에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즉, 숨 쉬는 기관이 제 기능을 하기 전에 이미 성장이 억제돼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감기나 기관지염이 자주 생기면 손상은 더 심해진다.
또한 어린이는 흡입량에 비해 체표 면적이 작고, 호흡 수가 빠르기 때문에 같은 양의 연기에 노출돼도 더 많은 독성 물질을 흡수하게 된다. 이게 반복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폐 기능이 정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만성적 기도 손상과 염증 반응으로 이어져 COPD 발생률이 높아지는 구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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