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은 신진대사부터 해독, 영양소 저장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장기다. 맡고 있는 기능이 다양한 만큼, 손상을 일으키는 원인도 다양하다. 그 중 하나가 ‘간 섬유화’다. 간 조직 내에 섬유성 조직이 과도하게 축적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초기에는 증상이 미미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심각한 질환으로 발전할 위험이 높다.
광주과학기술원(GIST)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공동연구팀이 간 섬유화 증상 치료를 위한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했다.
간 섬유화의 원인과 위험성
간 섬유화는 간 조직에 발생한 염증 또는 간 세포의 손상으로 세포외기질(ECM)이 과도하게 축적돼 간의 구조와 기능이 망가지는 것이다. 주요 원인으로는 알코올 남용, 비만으로 인한 대사질환, 자가면역성 간 질환, 바이러스성 간염 등이 꼽힌다.
간에는 ‘간별상세포(HSC cells)’가 존재한다. 간별상세포는 비타민 A를 저장하는 역할과 함께 간이 손상됐을 때 콜라겐 같은 섬유성 물질을 만들어 치유에 기여하는 역할도 겸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간별상세포는 적절한 양의 섬유성 물질을 생성해 간의 회복을 돕는다.
문제는 간 손상이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경우다. 간 손상이 계속될 경우 간별상세포가 만들어내는 섬유성 물질이 과다해지게 되고, 이로 인해 간 섬유화가 발생한다. 간 섬유화는 간 기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지속될 경우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어 조기 치료가 필수다.
현재까지 간 섬유화에 사용하는 치료제 중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것은 ‘레스메티롬(Resmetirom)’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 치료 효과가 몹시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지적돼 왔다. 위약군 집단과 비교한 결과 레스메티롬의 간 섬유화 증상 개선 효과는 12~14% 정도로 나타났다. 이에 간의 구조와 기능을 보존하고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의 필요성이 강조돼왔다.
신약 후보물질 19c 개발
GIST 화학과 교수이자 (주)제이디바이오사이언스 대표인 안진희 교수는 KAIST 김하일 교수, 전북대학교 의대 생리학교실 최원일 교수와 공동연구팀을 꾸려 간 섬유화 치료를 위한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물질은 ‘19c’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9c는 세로토닌 수용체 2B 길항제(특정 수용체와 결합해, 활성화를 방해하는 물질)로 작용한다. 간별상세포에서 세로토닌 수용체 2B의 작용을 차단함으로써 간 섬유화 진행을 억제하는 원리다.
동물 모델 실험을 통해 효과를 검토한 결과, 19c는 간별상세포가 만드는 섬유화 관련 단백질의 발현을 억제하고, 세포외기질(ECM)의 축적을 현저히 감소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19c의 길항 효과는 IC50=1.05nM로 나타났다.
IC50은 ‘반응 저해 농도 50%’라는 뜻으로, 19c가 간 섬유화 반응을 반으로 저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이를 위한 농도가 1.05나노몰이라는 낮은 수준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부작용 위험까지 고려
세로토닌은 중추신경계에서 행복감과 만족감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생리적 기능에 영향을 미치며,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수용체가 따로 있다. 간 섬유화의 원인이 되는 2B 수용체의 활성화를 억제할 경우 주의력이나 집중력이나 감정 조절에 어려움이 생겨 ‘집중 장애’ 또는 ‘충동성’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연구팀은 19c를 설계할 때, 제한적으로 혈액-뇌 장벽(BBB) 투과율을 갖도록 했다. 말초 조직에만 선택적으로 분포하는 극성과 지질친화도, 유연성을 갖도록 설계해, 중추신경계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한 것이다.
연구를 이끈 GIST 화학과 안진희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개발한 19c는 강력한 항섬유화 효능과 안전성을 동시에 갖춘 약물로, 간 섬유화 치료제 개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향후 임상 연구를 통해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되면 실질적 치료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과 보건복지부 기초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았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의약 화학 저널(Journal of Medical Chemistry)」에 지난 3월 6일 온라인 게재됐다. 논문명은 ‘간섬유증에 대한 말초 5HT2B 길항제의 합성 및 생물학적 평가(Synthesis and Biological Evaluation of Peripheral 5HT2B Antagonists for Liver Fibrosi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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