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국립 심혈관 연구 센터(CNIC)에서는 면역 세포로만 알려져 있던 ‘호중구’가 피부에서 단백질과 같은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 ECM)을 생성해 피부 저항력과 무결성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됐다. 기존에 알려진 호중구의 역할과 새롭게 발견한 역할, 그리고 피부 장벽 강화와의 연관성에 대해 알아본다.
호중구의 기존 역할과 새로운 발견
호중구(Neutrophil)는 백혈구의 한 종류이자 가장 흔한 유형이다. 전체 백혈구의 약 50~70%를 차지하면서, 면역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포다. 호중구는 골수에서 생성돼 혈액을 타고 체내를 돌아다니는 ‘순환 면역 세포’의 한 종류다. 감염이나 염증이 발생한 부위로 이동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주체가 바로 호중구다.
본래 호중구는 세균, 곰팡이를 비롯한 병원균을 탐지하고 공격하여 제거하는 역할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감염이 발생하면 호중구는 염증 신호를 감지하고, 해당 부위로 이동해 염증 매개 물질을 방출하며, 활성산소종(ROS)과 같은 항균 물질을 생성해 병원균을 제거한다. 그런 다음 식세포 작용(Phagocytosis)을 통해 병원균을 없앤다.
여기에 이번 CNIC에서 수행한 연구를 통해 표피층 아래 세포외기질을 만들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호중구가 의외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 내용에 따르면, 호중구는 면역 체계로서 병원균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피부 장벽 강화에 기여해 병원균의 침입을 물리적으로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호중구의 피부 장벽 강화 기능
CNIC 연구팀의 설명에 따르면, 호중구는 피부의 탄력과 강도를 유지하는 콜라겐 등의 단백질을 생성하는 역할로 피부 장벽 강화에 기여한다. 호중구는 정상 상태에서는 체내를 순환하며 피부의 무결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피부 조직에 상처가 발생할 경우 반응해 그 주위에 보호 구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상처 주변에 생긴 보호 조직이 박테리아나 독소의 침입을 막아 상처가 덧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다. 이 기능은 TGF-β 신호 전달 경로에 의해 조절된다.
연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동물 모델에서 TGF-β 신호 전달 경로를 삭제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자 세포외기질의 축적이 감소해 피부가 더 취약하고 투과성이 높은 상태가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호중구의 역할 수행이 차단되면서 피부 장벽 강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을 이끄는 안드레스 이달고 박사는 “피부와 같은 신체의 구조적 요소와 면역 체계 사이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이야기했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을 통해 면역 체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피부 질환과 염증, 당뇨 및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전략을 강화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한편, 피부 호중구의 활동은 낮과 밤의 패턴, 즉 신체의 일주기 리듬에 따라 세포외기질의 생성을 조절한다는 것도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예를 들어, 호중구 활동이 야간에 활발해지는 덕분에 쥐의 피부는 낮보다 밤에 더 강한 저항력을 가진다.
다만, 피부의 저항력은 일주기 리듬 외에도 환경적 요인, 스트레스 여부, 호르몬 변화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달고 박사는 “체내 리듬이 신체 조직의 방어, 재생, 복구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추가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호중구에 주목한 새로운 치료 전략
한편, 이달고 박사는 CNIC 외에도 미국 예일대 의대에서도 재직 중이다. 그는 호중구가 세포외기질을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선천 면역’에 대한 기존의 이해와 지식을 넓힐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전까지 선천 면역은 주로 감염에 대한 방어에 국한됐으나, 이번 발견을 통해 면역 세포가 조직의 구조적 무결성을 유지하는 데도 기여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이에 따라 피부 질환 및 면역 장애에 대해 새로운 치료 전략을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면, 특정한 질환에서 호중구의 기능을 직접 조절하거나 TGF-β 신호 전달 경로를 조절하는 약물을 개발해, 피부 재생 및 염증 반응을 조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 면역 반응과 피부 상태를 분석해 맞춤형 치료 계획 수립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달고 박사는 현재 호중구가 세포외기질을 생성하는 과정이 조직의 비정상적인 두꺼움을 유발하는 ‘섬유화 과정’, 그리고 암 세포의 성장이나 전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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