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암치료를 방해하는 ‘나쁜 세포’만 정밀하게 제거할 수 있는 약물이 개발됐다. 이로써 고형암 치료에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면역항암제 개발 가능성이 생겼다.
면역항암제 효능과 고형암 치료 한계
경희대학교 생리학교실 배현수 교수와 응용화학과 강성호 교수 연구팀은 종양의 성장을 돕는 대식세포를 선택적으로 표적해 사멸하도록 하는 펩타이드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했다. 본래 대식세포는 종양을 죽이는 것(M1형)과 성장을 촉진하는 것(M2형)로 나뉘며, 이중 M2형을 표적으로 삼아 사멸시키는 메커니즘이다.
면역항암제 효능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강화시켜, 스스로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는 방식이다. 면역항암제 효능은 일반적으로 특정 혈액암에는 뛰어나다. 하지만 장기에 발생하는 고형암에는 치료 효과가 제한적으로 나타난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그 이유 중 하나는 고형암 주위의 ‘종양미세환경’ 때문이다. 암세포 증식을 돕는 주위 환경을 총체적으로 이르는 말로, 이들로 인해 면역 세포와 약물이 암세포 안으로 침투하기 어려워진다. 그중에서도 항염증 및 조직 회복 기능을 하는 M2형 대식세포가 종양미세환경에 있을 경우, 암세포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암세포 제거에 한계가 생긴다.
종양 살리는 면역세포 표적
경희대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종양 크기를 줄여줄 수 있는 자연계 ‘독 성분 물질’에 주목했다. 테스트해본 결과, 이 물질이 암세포를 돕는 M2형 대식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M2형 대식세포의 결합 분자인 ‘활성형 CD18 단백질’을 표적으로 정했다. 본래 CD18 단백질은 세포 접착 및 신호 전달, 면역 반응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이 M2형 대식세포에서 활성화되면, 종양의 성장 및 전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독 성분 물질이 갖고 있는 독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분자 구조를 재설계했다. 그 다음 M2형 대식세포 내 활성형 CD18 단백질을 인식할 수 있는 펩타이드-약물 접합체 ‘TB511’을 개발했다.
‘정밀 면역항암제’ 임상시험 예정
TB511을 동물 모델에 투여한 결과, 정상적인 대식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종양 내 M2형 대식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장암, 폐암, 췌장암 등이 유발된 동물 모델에서 종양 성장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것도 함께 확인됐다. 이는 TB511이 정상 면역 세포를 손상시키지 않는 ‘정밀 면역항암제’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지난 2024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TB511의 임상 1/2a상 승인을 얻었다. 올해부터 TB511이 면역항암제 효능을 충분히 발휘하는지를 재차 확인하기 위해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배현수 교수는 “이번 연구로 개발한 약물은 종양 내에서만 활성화된 CD18을 표적으로 M2형 대식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며 “향후 범용 면역항암제 개발 및 정밀 면역치료 기술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중견연구 지원사업으로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암 면역치료 저널(Journal of ImmunoTherapy of Cancer)」 4월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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