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우스갯소리로 “음악은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말이 나돈 적이 있었다. 워낙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다른 곳에서도 패러디하는 일도 꽤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다들 웃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음악이 마약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 어떨까?
음악 들으면 오피오이드 분비
이는 핀란드 투르쿠 대학의 산하기관 중 하나인 PET 센터에서 이달 초 발표한 연구의 내용이다. 「유럽 핵의학 및 분자 영상 저널(European Journal of Nuclear Medicine and Molecular Imaging)」에 게재된 이 연구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 뇌 속 ‘오피오이드 수용체’를 활성화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피오이드 수용체(Opioid receptor)는 모르핀, 헤로인, 펜타닐과 같은 마약성 물질과 결합해 쾌감 및 진통 효과를 일으키는 수용체다. 즉, 음악을 듣는 행위로 인해 오피오이드 수용체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음악이 마약성 물질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음악과 통증 완화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로도 볼 수 있다.
투르쿠 PET 센터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동안 양전자단층촬영(PET)으로 뇌에서 오피오이드의 분비를 측정했다. 또한, 기능적 자기공명 영상(fMRI) 촬영으로 오피오이드 수용체 밀도가 뇌 활성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모니터링했다.

‘기분 좋은 전율’의 이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행위는 ‘쾌락’을 느끼게 한다. 이와 동시에 쾌락과 관련된 여러 뇌 영역에서 오피오이드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
흔히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들을 때 강렬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멋진 가창력을 뽐내는 가수의 라이브 무대를 직접 관람할 때면 ‘소름이 돋는다’라고 표현할 정도의 전율을 느끼는 경우도 흔하다. 이는 그만큼 많은 오피오이드 분비가 일어났다는 근거일 수 있다.
한편, 같은 음악을 들어도 사람마다 반응은 다르다. 이는 단순히 개인이 그 음악을 좋아하는지에 따른 이른바 ‘취향 차이’일 수도 있지만, 개인마다 오피오이드 수용체 수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오피오이드 수용체가 더 많은 사람은 음악을 감상하는 동안 뇌가 더욱 활성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음악과 통증 완화의 연관성
물론 이는 ‘작용 메커니즘’에 국한한 이야기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음악이 마약성 물질과 비슷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맞지만, 그 ‘강도와 효과’ 면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음악에 의한 수용체 활성화는 자연스럽고 상대적으로 약한 자극이므로, 중독이나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연구팀은 뇌의 오피오이드 시스템이 쾌락 뿐만 아니라 통증 완화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즉, 음악과 통증 완화 사이의 연관성을 다룬 기존의 연구 결과는, 음악을 들음으로써 뇌에서 오피오이드 반응이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향후 통증 관리 및 정신건강 질환 치료 전략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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