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라는 말은 다이어트 분야에서 고전과도 같은 대사다. 다이어트가 너무 힘들다며, 타고난 체질 문제라고 이야기할 때 종종 듣게 되는 멘트이기도 하다. 체질의 영향은 분명 있다. 다만, 그 체질이 무엇으로 인해 형성되는지는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먹는 것과 움직이는 것 외에 살이 잘 찌는 체질을 만드는 요인들. 서울대학교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조영민 교수가 말하는 ‘비만의 진짜 원인 3가지’를 알아본다.
‘살찌기 쉬운 유전자’일지도
유전자는 우리 몸이 태어날 때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유한 ‘설계도’다. 유전자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을 결정한다. 단순하게는 키나 얼굴 생김새에 관여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신체의 다양한 조절 기능에도 관여한다.
여기에는 몸의 에너지 대사 속도, 식욕을 느끼고 포만감을 조절하는 방식, 그리고 먹은 음식을 지방으로 저장하는 효율 등 체중과 관련된 요인들도 포함된다. 즉, 타고난 유전자가 비만의 진짜 원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유전자는 기초 대사량(가만히 있을 때 소모하는 에너지의 양)을 낮게 만들 수 있고, 식욕을 강하게 느끼도록 할 수도 있다. 또는 섭취한 칼로리를 지방으로 더 쉽게 저장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체중, 지방 분포, 대사 속도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연구 결과도 여럿 있다.
이러한 유전적 요인은 개인의 노력에 비해 결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리 식이조절을 하고 열심히 운동을 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비만의 진짜 원인이 유전자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유전자로 인해 비만이 ‘바꿀 수 없는 숙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타고난 경향성’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임은 분명하다.
서울대학교 내분비대사내과 조영민 교수는 “체지방량의 약 45~70%는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식습관이나 생활습관도 유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전으로 인한 체중의 영향은 더욱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 된다.

장내 세균 조성에 따라서도 달라
또한, 조영민 교수는 “장내 세균 조성에 따라서 체중이 더 늘 수 있는 경우도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장내 미생물이 비만의 진짜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은 최근 연구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장 속에 살고 있는 수십조 마리의 세균, 즉 미생물들은 단순히 음식물 찌꺼기를 분해하고 배출하는 기계적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부터 에너지를 얼마나 흡수할 것인지, 그리고 식욕이나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대사산물을 얼마나 만들어낼지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종류의 장내 미생물은 같은 종류, 같은 양의 음식물로부터 칼로리를 더 효율적으로 뽑아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같은 양의 음식을 먹더라도 우리 몸에 더 많은 에너지가 흡수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조영민 교수는 “흡수를 다 못 시키고 변으로 배설해야 하는 것들까지 영양소로 분해해서 흡수시켜주는 경우도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른바 ‘알뜰살뜰한 대사 시스템’인 셈이다. 이런 조건이라면 비만의 진짜 원인은 실제 먹는 양보다 체내에서의 소화흡수율에 있다고 봐야 마땅하다.
또한,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특정 대사산물은 뇌로 신호를 보내 식욕을 증가시키거나 포만감을 덜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 등으로 장내 유해균의 비율이 높아지면 이러한 ‘살찌기 쉬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체중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어떤가
조영민 교수가 말하는 비만의 진짜 원인,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외부 및 생활 환경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음식의 종류는 무엇이고, 그 양은 어느 정도인지, 하루 평균 운동량은 어느 정도인지,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 스트레스 수준은 어떤지 등이 포함된다.
또한, 건강한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는지,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와 같은 물리적인 환경이나,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식습관이나 라이프스타일과 같은 사회적인 환경도 포함될 수 있다.
앞서 조영민 교수는 체지방량에서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45~70%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유전자와 장내 미생물 환경에서 아무리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 하더라도, 주변 환경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어떨까? 좋지 않은 식습관, 운동 부족을 유도하는 환경에 늘 노출돼 있다면 체중 관리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늘 고칼로리 가공식품에 쉽게 노출되고, 앉아있는 시간이 길며,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수면이 부족한 환경은 좋은 유전자를 타고났다 하더라도 우리 몸을 살이 찌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다.
조영민 교수는 “미국에서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 네트워크 분석 결과, 비만인 사람들끼리 뭉쳐지는 것이 발견돼 논문으로 발표된 적이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우리가 인지하든 못하든, 주변의 ‘환경’이 우리의 행동과 신체 상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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