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생각하는 뇌는 어떤 모양인가? 아마 뇌를 직접 볼 일은 없어도, 잔뜩 주름이 져 있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뇌의 주름은 왜 생겼을까? 사람들이 가장 흔히 생각하는 이유는, 두개골 안 공간에 비해 뇌가 크기 때문에 ‘구겨 넣은 결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경과학계에서는 뇌의 주름이 뇌 기능 및 효율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견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작은 주름, 깊은 주름일수록 그 중요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뇌 주름은 정말 중요할까? 그렇다면 뇌 주름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일까?
뇌 표면의 ‘고랑’과 ‘이랑’
작물이 심어진 밭의 모양을 본 적이 있는가? 언덕처럼 솟은 부분을 ‘이랑’이라 하고, 그 사이에 홈처럼 파인 부분을 ‘고랑’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뇌의 표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을 ‘대뇌 이랑(Cerebral Gyrus)’, 주름으로 접혀 감춰진 부분을 ‘대뇌 고랑(Cerebral Sulcus)’이라 한다.
밭에서의 고랑이 이랑과 이랑 사이의 경계 역할을 하듯, 뇌에서도 고랑은 각 영역을 구분하는 경계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 특히 크기가 작은 고랑은 개인마다 형태가 제각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연구팀은 이를 ‘3차 고랑’이라고 지칭하며, 여기에 초점을 맞춘 연구 내용을 제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뇌의 3차 고랑, 즉 뇌 주름의 역할은 오랫동안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저 좁은 공간 안에 뇌를 ‘접어 넣는’ 과정에서 불규칙적으로 생긴 것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3차 고랑이 실질적인 뇌 기능과 중요한 관련이 있다는 가설을 세움으로써 뇌 주름의 역할을 검증하고자 했다.
연구팀은 7세부터 18세 사이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 43명을 모집했다. 이들에게 추론 능력이 필요한 과제를 부여하고,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해 이들의 뇌 활동을 측정했다.

뇌 주름의 역할, 영역 간 거리 단축
여러 뇌 영역 중 연구팀이 특히 주목한 것은 전두엽 외측 피질과 두정엽 외측 피질이다. 이 영역에 있는 3차 고랑들의 깊이를 살펴보고, 이것이 뇌 영역 간 연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고자 했다.
연구 결과, 해당 영역에 있는 3차 고랑의 깊이가 깊을수록, 영역 간 연결성이 더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3차 고랑의 깊이가 깊은 참가자들이 추론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더욱 활발한 뇌 활동을 보여줬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깊은 고랑이 만들어짐으로써, 해당 기능에 관련된 뇌 영역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것은 신경세포(뉴런)와 그 연결(시냅스)들의 거리가 짧아진다는 이야기고, 상호 간 정보·신호 전달 속도가 빨라져 뇌 효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정리하자면 뇌 주름의 역할은 뇌 영역 간 거리 단축에 있다는 뜻이다.
또한, 같은 원리로 다른 뇌 영역들 사이에 존재하는 3차 고랑도 같은 역할을 수행할 거라 보았다. 영역과 영역 사이에 깊은 고랑이 형성될수록 그들 영역 간의 거리가 단축된다. 이는 해당 영역들이 함께 사용돼야 하는 상황에서 뇌가 보다 효율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연구팀이 내놓은 해석은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접근이다. 뇌 피질이 아무렇게나 무작위로 ‘구겨져’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봤던 기존의 견해와 달리, 뇌 주름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보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인간 뇌 기능의 핵심 영역
연구팀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의 뇌는 상대적으로 표면에 주름이 없이 매끄럽다. 다만, 영장류에 해당하는 동물들은 피질 위에 고랑과 이랑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반면, 인간의 뇌는 매우 뚜렷한 굴곡과 주름으로 덮여 있다. 사실상 피질의 60~70% 정도가 주름에 묻혀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고랑의 패턴’이 변할 수 있다. 어떤 고랑은 더 깊어질 수 있고, 반대로 얕아질 수도 있다. 연구팀은 이를 개인의 경험에 따른 차이로 규정했다.실제로 연구팀이 스캔한 어린이들의 고랑은 크기, 모양, 위치 면에서 차이가 있었으며, 심지어 어떤 아이들에게는 있는 고랑이 다른 아이에게는 없는 경우도 있었다.
멀리서 봐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의 ‘1차 고랑’은 발달 과정에서 먼저 드러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띤다. 하지만 작고 미세한 3차 고랑들은 발달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며, 가까이에서 관찰해야 보일 정도로 작은 것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추론 능력, 의사결정 능력, 계획 능력, 자기 통제력과 같은 고차원적인 뇌 기능 차이는 결국 3차 고랑의 구조 차이에서 나타난다는 것이 연구팀의 최종적인 해석이다. 연구팀은 좋은 경험을 꾸준히 누적함으로써, 개인의 인지 발달 경로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성인 이후에도 인지 기능이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뇌의 3차 고랑들을 보다 정확하게 식별하고 분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별 뇌 구조를 보다 정밀하게 파악하고, 실제 뇌 기능과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발판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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