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를 즐겨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원두의 품종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이제 국내에서도 보편적인 블렌디드 제품부터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는 싱글 오리진까지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잘 아는 품종에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시큼하거나 불쾌한 맛이 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른바 ‘산패된 맛’이다. 커피의 산패된 신맛은 왜 나는 것인지, 산패된 커피가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도록 한다.
커피의 개성을 보여주는 ‘산미’
커피는 본래 다양한 종류의 ‘산미(Acidity)’를 머금고 있다. 국내에서 널리 소비되는 케냐 원두는 ‘상큼한 과일 같은 산미’라고 표현하며,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의 경우 ‘화사한 꽃향기 같은 산미’라고 표현하곤 한다. 각 원두의 세부적인 품종과 등급 등에 따라 그밖에 복합적인 향이 포함돼 있다. 커피를 깊게 즐기는 사람들은 이러한 풍미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취향을 구축하기도 한다.
커피의 산미는 주로 원두에 포함된 다양한 ‘유기산(Organic Acids)’에 의해 결정된다. 커피의 대표적인 항산화 성분으로 널리 알려진 ‘클로로겐산’을 비롯해, 구연산, 사과산, 아세트산, 퀸산, 그밖의 다양한 유기산들이 포함돼 복합적인 향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커피 원두의 품종과 자라는 토양에서부터 차이가 나며, 재배 방식과 가공법, 로스팅 과정의 차이에서도 저마다 독특한 조합과 농도를 이루게 된다. 사람마다 감각의 차이는 있기에 모두가 똑같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향을 중심으로 그 품종만의 특색을 만들게 된다. 산미의 발달 정도에 따라 신선함과 품질을 가늠하는 지표로 삼기도 한다.

변질된 신맛의 원인, ‘산패’
아는 사람들은 잘 아는 사실이지만, 커피는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쓰고 남은 커피 찌꺼기를 탈취제로 사용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바꿔 말하면, 커피는 생두 상태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질되기 쉽다. 그 결과가 바로 ‘산패(Oxidation)’다.
산패된 커피의 시큼한 맛은 앞서 말한 ‘산미’와는 확연히 다르다. 아무리 입맛이 둔한 사람이라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시큼하고 톡 쏘는 듯한 맛이 난다. 사람에 따라 쇠맛 같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꿉꿉하게 찌든 맛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커피가 산패되는 이유는 커피에 함유된 지방(기름) 성분이나 방향족 화합물 등이 공기 중의 산소, 빛, 열, 습기 등과 반응해 변질되기 때문이다. 로스팅된 커피 원두는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0~20% 정도의 지방 성분을 포함한다. 이들이 산화되면서 휘발성 화합물 또는 저분자 유기산을 만들어내는데, 이로 인해 불쾌한 신맛이 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커피가 가지고 있던 본연의 산미 성분은 파괴되고, 그것을 덮어버리는 불쾌한 맛과 향이 강하게 남는다. 특히 로스팅 후 분쇄까지 마친 커피는 공기 접촉 면적이 더 넓어지기 때문에, 산패가 더 빠르게 진행된다. 추출까지 마친 액체 상태의 에스프레소나 콜드브루 역시 마찬가지다.
산패된 커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산패된 커피를 일부러 마시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맛에 매우 둔감하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맛이 좀 이상하다’ 정도로 넘기고 마시는 경우도 있다. 산패된 커피를 마셔도 건강에 문제가 없을까?
산패는 기본적으로 ‘변질’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종류의 음식이든, 변질되면 영양적 가치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건강에 해로운 물질이 생성되기도 한다. 흔히 여름철 ‘음식이 쉬었다’라고 하는 경우도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특히 지방(기름) 성분은 산패되는 과정에서 과산화 화합물 또는 알데히드와 같은 물질을 생성하는데, 이들은 세포 손상을 유발하는 산화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커피의 산패 역시 함유된 지방 성분의 과산화가 주 원인이다. 산패된 커피라 해도 작은 컵에 담겨 판매되는 정도의 적은 양은 그리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뚜렷한 개인차가 나타나므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소화기관이 민감한 사람 또는 어떤 이유로 체내 염증 수치가 높은 사람은 적은 양으로도 이상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신선한 커피 맛을 위하여
사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이야기다. 커피의 맛과 향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생두 상태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매 공정마다 산패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로스팅 원두를 판매하는 업체에서 ‘당일 로스팅’이라든가 ‘O일 내 판매’와 같은 포인트를 강조하는 이유다. 또, 원두를 직접 사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량 구매에 비해 비싸더라도 소량 포장된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가정에서 균일하게 분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아예 주문과 함께 분쇄한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분쇄된 원두는 산패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한다.
커피는 열과 습기에도 약하고, 주위 환경에 존재하는 냄새를 잘 빨아들이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커피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냉장고나 냉동고에 보관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또한, 아무리 잘 보관하더라도 커피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변질되기 쉽다. 따라서 단가가 싸다는 이유로 대량 구매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으며, 자신의 소비량을 감안해 1~2주 내에 소비할 수 있는 양만큼만 구매하는 것을 권장한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