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유전자 일부를 편집해 꽁무니에서 붉게 빛나는 실을 방출하는 실험이 성공했다. 마블 코믹스의 인기 캐릭터 스파이더맨과 같이 강화된 거미줄을 만들어내는 날이 올 것으로 학계는 기대했다.
독일 바이로이트대학교 토마스 샤이벨 교수 연구팀은 17일 실험 보고서를 내고 붉은빛을 내는 거미줄을 뽑아내는 거미를 유전자 편집을 통해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이번 성과는 국제 화학지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에 먼저 소개됐다.
연구팀은 유전자 편집 도구인 크리스퍼(CRISPR)의 하나인 CRISPR-Cas9을 이용해 거미를 실험했다. 이 기술은 여태 많은 동식물의 유전자 편집에 동원돼 다양한 성과를 냈는데, 거미에는 사용한 사례가 전무했다.
연구팀이 굳이 거미를 실험한 이유는 종의 다양성과 거미줄이다. 거미는 4억 년간 진화를 거치며 각각의 환경에 맞게 약 5만 종이 갈라진 커다란 곤충군이다. 워낙 분기가 잦았고 종이 많아 생물 중에서 7번째로 큰 그룹(목)이다.
토마스 교수는 “특히 거미는 꽁무니에서 뽑는 거미줄이 특이하다. 둥근 그물을 치는 무당거미의 경우 최소 7가지 서로 다른 실을 사용하고 용도도 제각각”이라며 “유연하고 비강도(밀도당 강도)가 강철과 맞먹는 강력한 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때문에 인류는 그동안 어떻게든 거미줄을 활용하려 했지만 그다지 진전은 없었다”며 “거미의 대부분은 세력권 의식이 강하고 집단생활을 선호하지 않아 양식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학자들은 합성 거미줄 기술에 눈을 돌렸다. 2023년 누에의 유전자를 편집해 내열성 합성섬유 케블라보다 강한 거미줄을 합성하는 실험이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이에 착안한 연구팀은 아예 거미 자체의 유전자를 직접 개조할 생각을 떠올렸다.
우선 연구팀은 비교적 손쉬운 유전자 제거(특정 유기체의 유전자가 동작하지 않게 하는 유전학적 기술)를 실험했다. 목표물은 눈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시네 오큘리스(sine oculis)다. CRISPR-Cas9 기술을 응용해 DNA 편집을 위한 용액을 만들고 말꼬마거미 암컷의 배에 주입했다.
DNA 편집 용액은 난세포에 작용해 수컷과 수정 후 눈이 없는 거미 새끼가 탄생했다. 거미의 유전자 편집이 가능함을 확인한 연구팀은 다음으로 거미줄 유전자 조작을 시도했다.
거미줄에 포함되는 주요 단백질 중에는 스피드로인(spidroin) 유전자가 존재한다. 연구팀은 말꼬마거미 암컷에 DNA 편집 용액을 주사하되, 이번에는 붉은 형광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섞었다.
그 결과 태어난 새끼 거미 중에는 붉은 형광색 실을 뽑는 개체가 섞였다. 토마스 교수는 “이는 인위적으로 유전자 또는 일단의 유전자군을 세포에 넣어 발현하게 하는 유전자 도입이 성공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교수는 “CRISPR-Cas9으로 조작한 유전자 배열을 거미줄 단백질에 집어넣는 세계 최초의 성과를 거뒀다”며 “이번 실험은 현재도 충분히 뛰어난 거미줄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가능성이 있다. 영화 ‘스파이더맨’ 속 장면이 실제가 될지 모를 일”이라고 언급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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