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지 기능의 저하를 막기 위해 두뇌를 활발하게 쓸 것을 제안하는 내용이 종종 눈에 띈다.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최근에 접했던 것들을 예로 들자면,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것, 그리고 잠자는 동안 후각을 통해 향기 자극을 주는 것이 있었다. ‘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통해 인지 기능을 활성화시킨다는 접근이다.
하지만 ‘그럴듯한’ 설명에 혹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수행하는 대부분의 활동에는 뇌의 판단이 개입한다. 이른바 ‘멍해진 상태’에서도 기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면, 뇌는 모든 상황에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정 활동이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된다’라는 말을 들으면, 한 번쯤 의심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제로 그것이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뉴욕 주립 빙엄턴 대학의 심리학 교수 이안 맥도노프와 마이클 둘라스가 글로벌 미디어 ‘더 컨버세이션’에 기고한 내용을 재구성하여 전한다.
‘뇌 트레이닝’ 게임, 정말 유용한가?
게임은 기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미디어다. ‘기왕이면 재밌게 하는 것이 좋다’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기능성 게임’이라는 타이틀로, 재미있게 구성된 게임을 통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 하는 프로그램이 시장성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뇌 트레이닝 게임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인지도 있는 검사법 등을 기반으로 인지 기능을 측정하고, 이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게임처럼 구성한 콘텐츠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다양한 종류의 뇌 트레이닝 게임을 접할 수 있다.
닌텐도 DS 및 모바일 앱으로 즐길 수 있는 두뇌 훈련 게임은 물론, ‘루모시티(Lumosity)’, ‘엘리베이트(Elevate)’, ‘피크(Peak)’ 등 다양하다.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퍼즐 게임들도 모두 ‘인지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라고 이야기한다.
맥도노프 교수와 둘라스 교수는 “게임에서 배운 특정 기술은 실제 세계에서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는 ‘두뇌 게임이 여러 영역에서 지속적인 인지 개선이라는 최종 목표를 충족하는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뇌 트레이닝 게임의 효과를 의심하는 학자들은, 게임 형태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반복하면, 그저 ‘그 게임을 더 잘하기 위한 능력’만 향상되는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만약 그것들이 ‘인지 기능’이라 불리는, 뇌의 복잡한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면 그에 대한 엄격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연방거래위원회(FTC)’라는 독립 기관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공정거래위원회와 소비자보호원의 역할을 겸하는 기관이다. 2016년 FTC는 뇌 트레이닝 게임을 표방하는 ‘루모시티’에 대해 5천만 달러(현재 기준 약 7백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업무나 학업 성과를 높일 수 있고, 인지 기능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착각’ 내지는 ‘과도한 기대’를 하게끔 했다는 이유다.
‘능동적 학습’이 핵심이다
우리 뇌는 여러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위 말하는 ‘인지 기능’은 어느 한 영역에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뇌의 여러 영역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기능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에 답해보자. ‘특정한 패턴’이 반복되도록 구성된 게임을 통해 인지 기능을 단련할 수 있을까? 아마 고개를 끄덕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게임의 구성 방식에 따라 뇌의 단일 영역 또는 몇 개의 영역 정도는 꾸준히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현실 세계와 동일하지 않은 이상, 포괄적인 인지 기능의 향상은 어렵다. 서로 다른 영역을 자극할 수 있는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엮어,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 봐야할 것이다.
맥도노프 교수는 2013년 수행된 ‘시냅스 프로젝트’라는 연구에서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를 평가하는 데 참여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성격의 활동을 하도록 했다.
한 그룹은 ‘디지털 사진 촬영’이나 ‘퀼팅(Quilting, 여러 겹의 천을 바느질하여 패턴이나 디자인을 만드는 활동)’ 중 하나를 선택해 수행하도록 했다. 다른 한 그룹은 퍼즐 풀기, 음악 감상, 영화 감상, 여행, 요리 등의 활동을 하도록 했다. 양쪽 모두 14주 동안 매주 15시간 이상 활동을 수행했고, 프로젝트 전과 후에 각각 인지 능력 테스트를 진행했다.
테스트 결과, 디지털 사진 촬영이나 퀼팅을 수행한 사람들이 기억력, 처리 속도, 추론 능력에서 상당한 수준의 향상을 보였다. 맥도노프 교수는 이에 대해 ‘기존에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활동’을 통해 마치 ‘추상적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이 뇌를 폭넓게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참가자들의 뇌를 스캔해본 결과, 새로운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신경 효율성’이 더 증가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신경 효율성이 높다는 것은, 어떤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 효율성이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경 자극 및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혼자 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도전’
시냅스 프로젝트에서 확인한 또 한 가지는, 인지 능력 향상에 있어서는 그룹 단위의 활동과 단독 활동 간에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보통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하는 활동이 더 이점이 있다고 여기게 마련이다. 그것이 사회성 발달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개인의 인지 능력 향상에서는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핵심은 ‘도전 요소’의 존재 여부다. 인간에게 있어 ‘무지’란 곧 ‘공포’와 이어진다. 본능적으로 잘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고 꺼린다는 이야기다. 맥도노프 교수와 둘라스 교수는 이 본능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인지 기능 향상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영역을 배우거나 도전하는 것은 대부분 노력을 요구하고 때때로 좌절감을 안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고와 판단을 관리하는 ‘전두엽’과 주의력 및 감각 입력을 관장하는 ‘두정엽’이 활성화된다. 이 둘이 끊임없이 소통함으로써 뇌는 모든 종류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되고, ‘멍해진 상태’가 되는 일이 없어진다.
뇌 트레이닝 게임이 무조건 쓸모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뇌 트레이닝 게임도 충분한 도전이 될지 모른다. 다만, 뇌에게 정말 필요한 자극을 주려면,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는 요소가 하나라도 더 많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친절하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게임은 오래지 않아 한계를 맞이한다. 뇌가 금방 익숙해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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